열등감이 많은 사람은 식탐하는 습성이 있다고 합니다. 그가 바로 그랬습니다. 고기고 빵이고 우유고 한없이 많이 먹었습니다. 많이 먹으니 뚱뚱할 수밖에 없었고 뚱뚱하니 키가 더 작아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청년의 키는 152센티미터를 넘어본 적이 없습니다. 가까이 지내는 친구도 별로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연히 여자들로부터도 인기가 있을 리 없습니다.
말 그대로 열등감의 덩어리인 외로운 남자였습니다. 주머니에 돈이 있는 날이면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고작 한다는 짓이 비엔나 뒷골목의 사창가에 드나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다가 32살의 젊은 나이에 장티브스와 매독이 겹치면서 이 불행한 청년은 세상을 하직하고 맙니다. 당시에는 항생제 같은 현대적인 개념의 의약품이 생겨나기 이전이기도 하긴 했지요. 사람의 눈으로 보자면 누가 봐도 참 볼품없는 남자의 일생입니다. 한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평가나 평판을 이렇게 내려버리기 쉬운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주인이시자 공평의 주인이신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 청년을 특별히 사랑하시어 그에게 음악적 재능이라고 하는 남다른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피아노를 칠 줄 알게 하셨고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악상이 떠오르면 즉석에서 그것을 악보에 옮기기도 하였습니다. 그 결과 32년 동안 밖에 세상에 살지 못하였으면서도 그는 800곡이 넘는 불후의 명곡들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그가 죽고 난 후에야 비로소 세상 사람들은 그가 작곡한 악보들이 천하의 걸작들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로부터 180년이 지난 오늘날, 지구상의 인류치고 그의 빛나는 이름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 1797∼1828)를 모르는 이는 없습니다. ‘세레나데의 황제’라 불리기도 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성스러운 연주자’로 칭송되기도 하는 천재 음악가 슈베르트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참으로 많은 종류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생김새가 다르고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저마다 즐겨하는 일이 다릅니다. 그런 가운데서 우리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잘못 중의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타인에 대한 평가를 자기의 잣대로 쉽게 해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음악가 슈베르트에 대한 평가에 이르러서도 인간의 잣대는 제각각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그래서 또 해보게 됩니다. 우리 인간은 사람에 대한 평가를 자기의 잣대로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오로지 사랑으로만 인간을 평가하십니다. 키 작은 청년 슈베르트에 대한 각별하신 사랑, 또는 선한 자의 마당에나 악한 자의 마당에나 똑같은 비를 내려주시는 까닭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만재 / 카피라이터,‘막쪄낸 찐빵’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