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어머니, 아들이 한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이 아파트는 아버지가 매도인으로부터 매수하여 아버지의 명의로 등기를 해놓은 상태인데, 얼마 전 아버지가 아무런 생각없이 이 아파트를 A에게 무상으로 증여하기로 A와 합의를 해 버렸다(구두 합의에 의한 증여이고, 등기는 아직 넘겨주지 않은 상태). 그후 아버지는 소천했다. 아들이 아버지와 A사이의 증여계약을 해제해 버리고 이 계약을 무효화시킬 수 있을까?

 증여의 가장 큰 특징은 아무런 대가가 없는 ‘무상’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무상성 때문에 민법은 원칙적으로 증여자가 증여계약 후에도 임의로 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있게 하였다(민법 제555조). 그러나 일정한 상황에서는 해제를 못하게 하고 있다. 즉  증여계약이 이미 이행되어 버렸거나, 아직 이행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증여계약이 ‘서면’으로 이루어진 경우에는 증여계약을 마음대로 해제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만약 증여계약이 이미 이행이 완료된 상태라면 사기, 강박 등의 예외적인 사정이 없는 한 증여자(또는 상속인: 증여자가 사망한 경우 증여자의 해제권을 상속인이 상속하게 됨)가 증여계약을 사후적으로 해제하지 못한다(민법 제558조). 증여계약대로 이미 이행이 끝난 상태라면 이를 사후적으로 해제하여 수증자(증여를 받는 사람)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이행이 완료된 것인지 여부는 부동산은 등기가 수증자에게 넘어간 것인지 여부가 기준이고, 동산인 경우에는 인도를 한 것인지 여부가 기준이 된다.

 한편 아직 증여계약의 이행이 완료되지 않았다면 일단은 증여계약을 해제하여 무효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 있는데, 이 단계에서는 그 증여계약이 ‘서면’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여부를 조사해야 한다. 설사 아직 이행이 완료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증여계약이 ‘서면’으로 이루어진 것이면 증여자(또는 그 상속인)가 임의로 증여계약을 해제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민법 제555조). 서면으로 이루어지지 아니한 증여계약은 증여자가 경솔하게 증여한 것으로 보고 임의로 해제할 수 있으나, 서면에 의한 것은 증여자가 경솔하게 증여계약을 한 것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본 사례는 아버지(증여자)가 A(수증자)와 증여계약을 하기는 했지만 아직 등기를 A에게 넘겨주지 않은 상태라 증여계약 이행이 완료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아들이 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는 하므로, 다음 단계로 증여계약이 서면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면 된다. 본 사례는 아버지가 A와 서면합의를 한 것이 아니고 단지 구두합의를 한 것이기 때문에 아들은 아버지와 A간의 증여계약을 언제든지 해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생전에 아파트를 매도인으로부터 매수하였음에도 여전히 등기는 매도인 명의로 남겨 두었고 아직 아버지의 명의로 등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A와 증여계약을 한 경우를 살펴보자. 이러한 상태에서 아버지가 매도인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수증자 A에게 양도하고 그 양도사실을 아파트 매도인에게 통지까지 하였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에는 아직 아파트의 등기가 수증자 A에게 넘어가지 않았으므로 증여계약의 이행이 완료되지 않은 것으로 보고, 또한 서면에 의한 증여계약도 아니므로 아들이 아무 때라도 임의로 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할까? 그렇지 않다. 이 경우에는 아버지가 소천하기 전까지 아파트를 자신의 명의로 등기를 해 놓지 않은 상태라서 아버지는 이 아파트에 대하여는 당시에 소유권(물권)을 취득하지 못하고 단지 매도인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이라는 채권만을 가진 채권자에 불과했다. 이때는 증여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파트라는 ‘부동산 자체’가 아니라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이라는 채권이기 때문에 비록 부동산 자체의 등기는 아직 A에게 이행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이라는 ‘채권’을 A에게 양도하고 양도사실을 매도인에게 통지하면 증여의 이행(채권의 양도행위)은 모두 완료된 것으로 본다.

 따라서 증여계약의 이행이 완료됐으므로 비록 서면이 아닌 구두합의에 의한 증여라 하더라도 아들은 증여계약을 해제하지 못한다. 오히려 수증자인 A가 채권 양수인으로서 매도인을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행사하여 이 아파트의 등기를 받아갈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증자 A가 이 아파트의 등기를 받아갈 권리가 있다 하더라도 아들이 일정한 법적요건을 충족한다면 유류분반환청구권을 행사하여 원래 상속할 몫의 50%를 수증자에게 반환청구할 권리는 여전히 가지고 있다(민법 제1112조의 유류분반환청구권을 참조하기 바람).

 한편 아버지와 수증자 A사이에 당초 증여계약을 할 때 A가 일정한 대가를 아버지에게 주기로 한 경우(‘부담부 증여’라고 함), 수증자 A가 그러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있는 경우 아들은 수증자 A가 그러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점을 이유로 하여 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세무측면을 보면 무상증여시에는 증여를 받는 수증자가 증여세를 세무서에 내야하고 이를 내지 않는 경우에는 증여자도 수증자와 연대하여 증여세를 내야한다는 점도 알아 두자.

한상영 변호사(법무법인 백석·법조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