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히 11:24~26)
제주도 최초의 선교사 이기풍 목사는 제1차, 2차의 제주도 선교 13년간의 교역을 청산하고 제주도를 떠나 육지로 나오신 뒤에는 주로 교회가 없는 곳을 두루 다니면서 개척 전도를 했습니다. 일제 말기 이기풍 목사는 70세 때(1934년) 전라남도 말단에 있는 여수군 남면 우학리라는 작은 섬에 들어가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박해는 따라왔습니다. 하루는 여수경찰서의 형사대가 경비선을 타고 와 이기풍 목사를 데려가고 말았습니다. 신사참배 반대자, 미국인의 스파이, 계시록 강해 등 세 가지 죄목으로 체포된 것입니다. 그러나 체포된지 10일 만에 풀려났습니다. 너무 병세가 심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 그의 아내가 17세의 달 사례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사례야, 아버지는 결국 왜놈의 사슬에 묶여 경찰서로 끌려갔다. 영적으로 볼 때 얼마나 큰 영광인지 모른다. 우리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신사에는 절을 못한다. 너무 마음을 동요하지 말아라”
우리도 이기풍 목사님과 그 가족의 믿음처럼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큰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