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성격이 다양해서 어떤 사람은 매우 급한 성격인 반면에, 또 어떤 사람은 매사에 매우 느긋한 성품을 가지는 경우가 있다. 세 명이 등장하는 다음 사례를 살펴보자. A가 B에게 돈을 빌려 주었고, B도 역시 C에게 돈을 빌려 주었다. 각 대여금의 변제기일이 돌아올 때 A는 B로부터 돈을 회수하고, B도 C로부터 돈을 회수하여 모든 상황이 순조롭게 종결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상황이 순조롭지 못하여 A가 B로부터 돈을 회수하지 못하고, B도 C로부터 돈을 회수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때 평소 미적미적하는 성품을 가진 B가 C로부터 돈을 회수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고 있으면, 마음이 급한 A는 B가 C로부터 빨리 돈을 회수하여 A에게 돈을 갚게 되기를 학수고대 할 것이다.

 이 경우에 A가 취할 수 있는 법적인 수단이 무엇이 있을까? 민법 제404조는 이러한 경우에 A에게 채권자대위권이라는 권리를 인정하여, A가 미적거리는 B를 대신하여(즉, 대위하여) C를 상대로 B에게 돈을 갚으라고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인 ‘채권자 대위권’을 규정하고 있다. 뜨듯미지근한 B를 바라만 보고 있는 A가 이러한 채권자대위권에 의하여 A가 직접 돈을 빌려준 적이 없는 C를 직접적으로 상대하여 B의 권리를 대신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A의 채권자 대위권에 의해 C가 B에게 돈을 갚게 되면, A는 B로부터 자신의 돈을 회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편리한 제도가 채권자대위권인데, 이러한 채권자 대위권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구비할 요건이 필요하다.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이 B의 무자력 요건인데, A가 대위권 행사 당시에 채무자인 B가 자신의 채무를 변제할 충분한 재산이 부족할 경우에만(즉, 채무자 B의 무자력 상태) A가 B를 대신하여 C를 상대로 B의 C에 대한 권리(금전채권)을 대신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B가 A에게 돈을 갚을 만한 충분한 재산이 있는 상태에서는(B의 유자력 상태) A는 B의 재산을 대상으로 직접 변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구태여 A가 채권자대위권을 행사하여 C를 상대로 B에게 돈을 갚으라고 요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둘째, B가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있는 상태여야 한다. 한편 B가 이미 C를 상대로 돈을 갚으라고 청구한 상태라면, 별도로 A가 C를 상대로 채권자대위권을 행사할 수가 없다.

 셋째, B의 C에 대한 권리가 이행기가 돌아온 상태여야 한다. 아직 C가 B에게 돈을 갚을 변제기일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는 당연히 A로서도 C를 상대로 채권자대위권을 행사하여 변제기일 보다 빠른 기일에 돈을 갚으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채권자(A)의 입장에서 요긴하게 사용되는 채권자 대위권은 위와 같은 사례인 채권자(A)가 채무자(B)에 대하여 금전채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 뿐만 아니라 금전채권 이외의 다양한 사례에서도 응용되고 있다.

 첫째, 소유권이전등기 청구권의 대위행사: 어떤 부동산이 있는데 이 부동산을  소유자인 ‘갑’이 ‘을’에게 매도하고 ‘을’은 다시 이를 ‘병’에게 매도한 상태에서 아직 소유 등기명의는 여전히 최초의 ‘갑’에게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하자(갑->을->병). ‘병은 ‘을’로부터 매수하였기 때문에 ‘을’을 상대로 매매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가지고 있고, ‘을’ 역시 ‘갑’을 상대로 매매를 원인으로 하는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가지고 있다.

 이 상태에서 ‘을’이 ‘갑’으로부터 소유권이전등기를 받지 않고 미적미적하고 있는 상태라면, 답답한 ‘병’이 ‘을’을 대위하여 직접 현재의 소유자인 ‘갑’을 상대로 ‘을’에게로 소유권이전등기할 것을 ‘을’을 대위해 청구할 수 있다. 등기가 ‘을’명의로 이전되면, 이제 ‘병’은 ‘을’을 상대로 ‘병’자신에게로 소유권이전등기를 해 줄 것을 최종적으로 청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대위행사하는 경우에는 위 금전채권의 경우와는 달리 등기이전만이 문제될 뿐이고 ‘을’의 재산상태와는 관련이 없기 때문에 채무자(을)의 재산상태가 무자력일 필요는 없다.

 둘째, 소유권 말소등기청구권의 대위행사: ‘을’이 ‘갑’에게 부동산을 매도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갑’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넘기지 않은 상태에서 ‘을’이 ‘병’과 짜고 다시 부동산을 ‘병’에게 매도하고 소유권이전등기까지 ‘병’에게 이전하는 경우이다. 이 거래에서 ‘을’에서 ‘병’으로의 소유권이전등기는 선매수인인 ‘갑’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한 반사회적인 행위로서 무효이므로 ‘병’의 소유권이전등기는 말소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갑’은 ‘을’이 ‘병’을 상대로 아무런 조치없이 미적미적하고 있으면 ‘을’을 대위해 ‘병’을 상대로 ‘병’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를 청구할 수 있다. 그후 ‘을’을 상대로 매매를 원인으로 ‘갑’으로의 소유권이전등기를 청구하면 최종적인 목적이 달성된다.

 셋째, 채권자대위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것들: 채권자가 채무자를 대신하여 행사하면 채무자의 인격을 본질적으로 해하는 것들은 채권자대위권을 행사할 수 없다. 즉, 친권, 이혼청구권, 위자료청구권, 상속의 승인이나 포기권, 상속회복청구권, 이혼으로 인한 재산분할청구권 등 가족과 관련되는 권리들은 대위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한상영 변호사(법무법인 백석,법조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