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되고 깨어있는 충만한 영성으로 분별해야

 요즘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을 살짝 들여다보면 걱정이 풍성하게 쌓인다. 특히 월요일과 화요일 9시뉴스가 끝난 후엔 채널돌리기가 무섭다. M방송국에서는 에덴의 동쪽, S방송국에선 타짜가 방영된다. 두 드라마의 공통점은 주인공 얼굴에 상처가 마를 날이 없다는 것이다. 폭력을 취미삼아 휘두르며 얻어 맞고 때리는 일을 단골삼아 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성공추구를 위한 주인공들의 내면세계가 숨겨져 있다. 선한 편에 서서 악한자를 대상으로 폭력을 휘둘러 정당성을 확보하는 교묘함으로 위장한다.

 또 한가지 특징은 화면을 화려하게 수놓는 도박에 있다. 한쪽에서는 카지노를 통해서 다른 한쪽에선 화투를 중심으로 이야기의 전개가 이루어진다. 두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화투와 포커를 잘만치면 이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이왕이면 각종 무술과 운동으로 몸을 만들어 폭력성까지 갖추면 금상첨화다.

 착각은 이어져서, 배신과 복수를 통해 인간의 죄성을 시원스럽게 분출하면 이 세상 멋들어지게 살 수 있을 것처럼 두 드라마는 우리에게 헛된 망상을 갖게 한다. 폭력과 도박이라는 비정상적인 성공코드에 집착하는 타짜와 에덴의 동쪽, 두 드라마는 비추천이다. 차라리 같은 시간대에 CTS(기독교TV)를 시청하는 것이 백배 낫다. 은혜로운 설교 두 편을 보며 마음과 시간을 지키는 편이 이득이다.

 미디어 학자 마샬 맥루한(M. McLuhan)은 텔레비전을 인간의 확장(Extention of Man)으로 보았고, 뉴욕대학 교수인 슈왈츠는 텔레비전을 ‘제2의 신(The Second God)’이라고 지칭했다. 텔레비전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은 ‘세상을 향한 창’이라는 긍정적인 입장과 ‘폭력과 범죄의 교실’이라는 부정적 입장 두 가지로 극단적으로 나뉜다.

 물론 텔레비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바뀌기도 한다. 그러나 텔레비전은 영상과 이미지의 위력을 갖기 때문에 우리가 판단하기에 앞서 먼저 머릿속을 잘못된 정보로 꽉 채운다. 이미지로 구성된 그 정보는 곧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행동으로 이어지게 한다. 드라마는 현실세계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가져다준다.

 얼마전 한 신문 기사를 보고 당혹감을 감출수 없었다. 논현동 고시원 흉기난동 사건의 용의자 정모씨가(31) 영화 ‘달콤한 인생’을 보고 범행을 준비했다고 밝힌 내용이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는 생활고로 인해 괴로워하던 차에 영화를 보고 주인공이 멋있어 보여 범행도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 듣는 것을 통해 죄를 짓게 하는 것은 에덴동산에서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 썼던 전통적인 방법이다. 가장 발달된 방법이기도 한 이 전술이 현대사회에서는 영화와 텔레비전의 영상매체로 구현됐다. 이런 영상매체들의 특징은 사람들로 하여금 영상을 통해 보여지는 세계를 진실로 믿게 만들고 필연성을 부여하여 강한 욕망의 분출로 나타나게 한다는 것이다. 범죄자들이 영상매체를 따라 모방범죄를 저지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텔레비전이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영화산업은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 작은 화면의 텔레비전이 어떻게 대형 스크린을 넘볼수 있느냐는 방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몇십년이 채 지나지도 않아서 텔레비전은 이미 거실과 안방을 점령하고 우리 생활에 밀착하여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와와 아담은 보고 듣는 영상을 통해 유혹당했고 죄를 지었다. 밧세바의 목욕장면을 본 다윗 또한 마찬가지였다.

IPTV로 재방송을 무한정 반복해서 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우를 범해선 안되겠다. 절제된 감성, 깨어있는 지성, 충만한 영성. 요즘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단어들이다.

임훈 목사 (강서대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