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의 만리포 해수욕장은 인적 없이 고즈넉하다. 맨발로 밟아가는 흰 모랫벌은 부드럽고 바다는 에메랄드빛을 닮아있다. 서해안의 기름 유출로 인한 참혹한 흔적은 아무데도 보이지 않는다. 서서히 밀물이 들자 지대가 낮은 모랫벌에 물길이 생기고, 그 물길 속으로  속이 투명한 치어들이 떼를 지어 나타났다. 마치 소풍이라도 온 듯 꼬리를 흔들며 헤엄치는 모습이 즐겁고 경쾌하다. 끼욱끼욱, 갈매기들이 바다 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다. 날치들이 물 위에서 펄떡펄떡 멀리 뛰기 연습을 한다.  대 자연의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고 웅장하고 감동적이다. 

 불과 수개월 전만해도 유조선의 기름 유출로 이 바다가 얼마나 중병을 앓았던가. 바다는 중환자실의 환자처럼 생명의 등불이 까맣게  꺼져들고 있었다. 그 비분강개함을, 그 안타까움을  말로 다 할 수가 없었지. 바다를 구하기 위해  달려와 두 팔을 걷고 땀을 흘리던 사람들은 참 아름다웠다. 역겨운 기름 냄새에 구토를 하면서도 바다를 살리려 안간힘 쓰던 몸짓들이 바위에 계란을 치는  것 같아 한숨만 나왔는데 드디어 해 낸 것이다. 자연을 사랑하는 국민의 열정이 마침내  죽음의 바다를 회생시키고 만 것이다.

 그래도 죄 없는 바다를 기름으로 뒤덮었던 인간의 죄는 남아있다. 인간을 위해  아낌없이 먹을 것을 마련해 주는  어머니 같은 바다에게 저질렀던 잘못을 사죄하고 싶었다. 용서해 달라고 빌고 싶었다. 쏴아아 파도가 밀려온다.  바다위의 기름을 걷어내고 돌을 닦고 모래를 닦아내던 그 마음 때문에 그 사랑 때문에 인간을 미워 할 수 없다고, 이미 용서했다고 바다가 말하는 것 같다.

 바닷가에서 아득히 수평선을 바라보면 내 지고 가는 삶의 무게들이  문득 가벼워짐을 느낀다. 한순간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파도처럼 산다는 것은 잠간인데 소유를 위해 몸부림치는 인간의 삶을 보며 바다는 무슨 생각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