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모든 일을 본인이 다 챙길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일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하여 본인은 자신을 대신할 ‘대리인’을 정당하게 지정하고 그를 통하여 거래행위를 하게 되는 바, 물론 이로 인한 법적인 효과는 본인이 부담하게 된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경우는 어떨까?
 어떤 부인(A)이 5천만원의 급전이 필요하여 남편(B) 몰래 친구(C)로부터 돈을 빌리고자 하였다. 친구는 부인만 믿고 돈을 빌려 줄 수가 없었는데, 부인이 남편 명의로 되어 있는 아파트(시가를 5천만원이라고 가정)를 담보로 제공하겠다고 하였다. 당시 부인은 남편 몰래 등기권리증, 인감도장, 인감증명서를 소지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친구에게는 자신이 남편으로부터 아파트 담보를 허락받았으니 아무 것도 염려할 것이 없다고 말하였다.
 친구는 부인과 남편 사이가 좋고 특별히 별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하여, 남편 명의로 되어 있는 아파트에 대하여 ‘매매예약’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 보전을 위한 가등기”(담보를 위한 것이므로 통상 ‘담보 가등기’라고 함)를 담보로 취득하였다. 그런데 변제일이 되어도 부인이 친구에게 돈을 갚지 않자 친구는 가등기를 소유권이전 본등기로 전환한 후 아파트를 이웃 사람(D)에게 매도해버렸다. 이제 아파트의 새로운 소유권이전등기를 취득한 D가 남편(B)을 상대로 아파트를 D에게 명도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었다.
 당연히 남편(B)은 펄쩍 뛰며 무슨 날벼락이냐고 소리치며, 부인(A)은 자신으로부터 아파트 담보에 대하여 아무런 승낙을 받은 바가 없으므로 권한 없는 ‘무권대리인’에 불과하며, 따라서 아파트 담보를 위한 가등기와 친구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 D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가 모두 무효라고 항변하였다.
 과연 D가 부동산 명도소송에서 남편(B)에게 승소할 수 있을까?
 부인(A)은 남편으로부터 아파트 담보를 위한 대리권을 승낙 받지 않았기 때문에 무권대리인에 불과하여, 원칙적으로 부인(A)의 담보가등기 설정행위는 무효이고 따라서 부동산 등기의 공신력이 인정되지 않은 우리 민법에서는 D의 소유권이전등기도 무효가 될 수밖에 없으므로, 남편(B) 승소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 민법은 대리인(A)이 정당한 대리권이 없더라고 일정부분 본인(B)에게 책임이 있는 경우에는, 대리권의 효력을 인정한다. 이러한 대리권을 ‘표현대리’(대리권이 없음에도 외부에서 보면 마치 대리권이 있는 것처럼 표현된다는 의미)라고 하는데 이 사례에서도 이러한 표현대리가 인정된다면 D가 승소할 것이다.
 우리 민법은 부인과 남편은 부부 사이로서 일상적인 가사일에 대하여는 서로 대리권이 있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일상 가사일에 대하여 이러한 대리권을 가진 부인이 본 사례와 같이 이러한 대리권을 초과한 행위(담보설정 행위)를 하더라도, 그러한 초과행위에 대하여 친구가 부인(A)에게 대리권이 있는 것으로 믿을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남편(B)은 부인의 담보가등기 설정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일반적으로 부인이 돈을 차용하면서 남편 명의의 부동산에 가등기를 설정하는 행위는 통상적인 일은 아니지만, 본 사례에서는 남편이 등기권리증, 인감도장, 인감증명 서류등의 관리를 소홀히 하여 이러한 서류를 부인이 소지하도록 방치한 과실이 있다. 친구도 이러한 서류를 부인(A)이 소지한 점을 믿고서 돈을 빌려주고 부동산을 담보로 취득한 것이므로, 친구는 부인(A)이 정당한 대리권이 있는 것처럼 오인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부인이 남편 몰래 담보 가등기를 설정한 행위는 유효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D는 정당한 소유권자로서 부동산 명도소송에서 승소할 것이다.
 여기서 부인의 담보가등기 설정 행위에 대하여 대리권이 있는 것처럼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에 대하여는 이를 주장하는 D가 입증할 책임이 있다.
 표현대리는 위와 같이 기본 대리권이 있는 대리인이 본래의 대리범위를 초과하여 대리행위를 한 경우 뿐만 아니라, 대리권이 있다가 소멸된 후에 대리행위를 한 경우, 그리고 본인이 대리인에게 대리권을 부여한 것처럼 외부에 표시한 경우에도, 대리권이 있는 것으로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인정된다.
 대리행위는 사회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측면이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본인, 대리인, 거래 상대방 등 3자간에 복잡한 분쟁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대리권 유무를 정확하게 살피면서 거래행위를 하여야 할 것이다.
                                                       한상영 변호사 법무법인 백석 (법조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