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집에 사는 대학 선배와 종종 만나 담소를 나누는데 그 날의 주제는 ‘입을 봉하고 싶다’ 였다. 잡지사 편집장 출신인 선배는 예전에 신참에게 “넌 기자로서 자질이 없으니 다른 길을 가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그런 얘기를 들었던 신참이 요즘 모 잡지사 편집장으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니, 입을 봉하고 싶을 수밖에.

 내 경우는 “속 차리라”는 충고도 했지만 그런 충고를 듣기도 했다. 울산에 살던 이십대 초반, 글짓기 대회에서 상 몇 번 탄 것에 기대어 친구들에게 “소설가가 꿈”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어느 날 우리가 자주 갔던 지하상가 옷가게에 잘생긴 남자 대학생이 얼쩡거리고 있었다. 친척집에 다니러 온 그가 국문과라는 걸 알게 된 친구는 다짜고짜 “얘 신춘문예 당선되어 소설가 되고 싶대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대학생이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날리며 “신춘문예가 뉘 집 개 이름인 줄 아나”라고 했다.

 시내나 빌빌 쏘다니는 시골애가 주제파악 못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꿈만 떠 벌였으니 무시당해 마땅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그 가게를 도망쳐 나왔다.

 도무지 가망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건만 몇 년 후 나는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했고, 신문사 공모를 통과해 소설가가 되었다.

 성공을 했거나 성공을 향해 가는 사람들을 보면 일단 끈질기다. 남들이야 뭐라고 하건 한번 세운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치밀하게 계산하여 또박또박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타이밍 다 놓쳐가며 꾸물꾸물 가는 사람도 있다.   

 될성부른 나무인지 아닌지 떡잎으로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남의 인생 들여다보기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우리의 잣대로 보면 안될 것 같은데, 나중에 결과물을 갖고 의기양양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비도덕적인 일을 하거나 사이비 단체에 빠져드는 건 단호히 충고해야 하지만, 남의 꿈을 간섭하는 일에는 신중해야 한다. 그 사람이 얼마나 기도하고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앞집 선배와 ‘앞으로는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보이는 사람을 마구 독려하자’고 다짐했다. 그래야 입을 봉하고 싶은 일이 생기지 않을 테니.

이근미 소설가 www.rootl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