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7시의 지하철은 콩나물시루이다. 입추의 여지없이 빽빽한데 경로석 한 자리가 비어있다. 그 앞에서 무거운 책가방을 멘 학생 하나가 좌우의 눈치를 살피며 쭈뼛거리다가 조심스레 엉덩이를 걸친다. 하지만 고개를 푹 숙이고 땅바닥을 내려다보는 폼이 마음이 영 편치 않은 모양이다.
 다음 정거장, 은발의 할아버지가 승차하셨다. 학생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따갑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학생이 눈치를 채고 화닥닥 일어서며 고개를 굽실한다.“괜찮다. 공부하느라 얼마나 힘드누. 나는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니 네가 앉아 가거라”

 할아버지의 인자한 말씀에 학생은 더 몸 둘 곳을 몰라 한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버릇없는 녀석이라고,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느냐고, 부모도 없는 놈이냐고 불호령이 떨어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야단맞아도 마땅할 만큼 뻔뻔한 아이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무한 경쟁에 내몰린 채 신음해 온 딱한 아이들이 아닌가. 학창시절의 우정도 낭만도 성적이란 중압감 앞에 검불처럼 날아가 버린 지 오래다. “죄송합니다. 할아버지, 어서 앉으세요”

 할아버지는 마지못해 앉더니 학생의 가방을 기어이 받아 드셨다. “요즘 학생들 차암 힘들지. 아암, 힘들고말고”
 지하철 안이 널찍하고 자리가 좀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어른은 공경 받아야 하니 의당 자리에 앉으셔야 하고, 학생들은 밤낮 공부에 시달리니 좀 앉아 쉬었으면 좋겠고, 아빠들은 하루 종일 회사 일에 지치고 피곤하니 또 앉으셔야 하고…. 아, 그러고 보니 이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 안의 사람들이 모두 앉아야 할 사람이구나. 마음이 아리다. 

 오죽 힘들었으면 눈치 보며 경로석을 침범했을까? 어른도 몰라보는 녀석이라고 호령하는 대신 공부하느라 지친 학생의 마음을 헤아리시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참 따스하다. 모처럼 지하철 안에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