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인 잣대란 있을 수 없어
하나님이 주신 가능성만 볼 것
‘너 자신을 알라’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라고 알려진 이 말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이 힘들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사실 많은 이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를 스스로 내리기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평가를 미루는 것이 사실이다. ‘객관적’이라는게 그 이유이다.
이런 잣대들로 인한 평가결과가 사람에 따라서는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목표를 재정립하는 등 새로운 도전의 계기, 출발선으로서의 역할을 하지만 반대로 자신의 한계선을 그어버리고 낙담하고 좌절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특히 이런 경우 열등의식에 사로잡히게 되는 역효과를 낳게 되는데, 이 때 쉽게 발견되는 현상이 자아상실, 자아불신, 무력감 등이 있겠다.
열등의식에 사로잡히면 사람은 자기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로 여기며 무의식 속에서 자신을 부정하고 때론 그 보상을 받기 위해 과격한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열등감을 느끼고 있으며 열등의식에 사로잡히는 경우는 일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열등의식이 자신의 발전을 저해하고 나아가 사회집단적인 현상이나 사회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에 조심해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열등의식에 관한 것은 성경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인류최초의 살인사건인 가인이 아벨을 살해한 것도 열등감이 원인이 되었다. 이처럼 열등감은 실로 무서운 것이다. 그럼 이런 열등감은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 것일까.
“하나님의 잣대에 자신을 비추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들이 무수한 잣대를 만든 이유는 자신을 알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자신도 아닌, 바로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머리카락의 숫자까지 기억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각기 다른 가능성을 주셨다. 그렇기에 사람이 만든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같은 기준선에 사람을 올려놓고 평가한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직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만이 그 가능성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열등의식에 사로잡힐 이유가 없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열등의식은 자신을 파멸시킬 뿐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품었던 열등감이나 가인이 아벨을 보며 느낀 열등감 모두 ‘죽음’이라는 안타까운 결말만을 낳았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항상 하나님이 주신 무한한 가능성을 기억하며 ‘주관적’인 열등의식을 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