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한 피 팔아넘긴 그의 죄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림 속 장면은 큰 무대처럼 설정돼 있어 
오묘한 빛과 어둠의 경건 한 폭에 모두 담아 
                                

 유다를 생각하면 착잡한 생각에 붙잡히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제자들의 무분별한 행동이다. 주님이 가장 믿고 사랑 했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다. 그것도 가벼운 얼굴 피하기 정도가 아니라 세 번이나 게다가 맹세코  부정하였다. 유다는 더구나 예수를 붙잡히게 하는데 앞장서고 그를 팔아 넘겼다. 더 괴로운 것은 예수님은 이를 미리알고 있었고 제자들과 본인들에게 직접 이를 지적하여 알리기까지 하였다. 그 일은 돌발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이미 구약시대 때부터 예견되어 있었다. 정녕 피할 수 없었던 것이라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그 뜻을 이루기 위해 한 인간 배신자의 역할이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과연 그 배신자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기독교는 질문의 종교라고 하지만 특히 이 부분은 깊은 묵상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 많다. 사건은 우선 이렇게 진행된다. 
 그때에 예수를 넘겨주었던 유다가 예수께서 정죄 당하시는 것을 보고서, 스스로 뉘우치며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그 은전 삼십개를 도로 갖다주며 말했다. “제가 무죄한 피를 팔아넘김으로써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했다.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요? 당신이 알아서 하시오” 그러자 유다가 그 은전들을 성소에 던져 버리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달아 죽었다.(마 27:3-6,양용의, 마태복음 어떻게 읽을 것인가. 464 쪽)

 칼빈은 나의 고민에 대해 자상하고 논리 있게 답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대략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유다는 잘못에 대해 괴롭고 슬퍼하기는 했지만 회개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후회 정도에 머무르고 있었다. 누구나처럼 그도 그의 잘못을 괴로워하였다. 그의 심경은 괴롭고 지쳐 있었으며 절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절망은 하나님에게까지 이르지 못하고 절망 자체에 머무르고 말았다. 오히려 가슴은 하나님으로 부터 완고하게 닫혀있어 그의 은총이 들어설 틈이 없었다. 바울이 적절히 지적했듯이 하나님에 이르는 근심이 아니라 세상근심 이었다(고후 7;10). 사실 그런 괴로움 이라는 게 바른 정의를 얕보는 사악한 이들에게 주는 신의 벌이라고 까지 말한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유다를 미워하기보다 불쌍히 여기셨다. 그의 후회가 깊을수록 예수님의 무죄가 더욱 두드러져 보이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그러한 위선은 대제사장들의 태도에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유다가 던져 버린 은화들을 받아들이는 그들의 태도는 어떠했던가. 애당초 그들이 주었던 돈을 마치 전혀 상관없는 듯이 성전고에 넣어 둘 수 없다고 한다. 그들 스스로가 더럽힌 돈이 아니었던가. 사악한 범죄자들은 그 범죄를 숨길 의도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랬기 때문에 그 배반의 일이 두고두고 전해져 내려오지 않은가.

 네덜란드에서 출신 렘브란트(Rembrandt) 생애의 영광과 시련에 대해서는 비교적 알려져 있는 편이다. 앙드레 말로는 그를 예언자적 기질의 소유자로  도스토예프스키와 같은 형제의 반열에 놓고 싶다고 했다. 라이덴에서 태어난 그는 암스테르담에 독립 미술 공방을 열었다. 그는 초상화 그리기로 곧 명성을 얻었고 집단 초상화의 새로운 장르를 열기도 했다. 그가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 내면의 깊은 심성과 정서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의 소유자로 이를 잘 화면에 잘 표출시켰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누구나 했던 이탈리아 여행이나  그곳의 그림유학을 하지 않았다. 그 무렵 네덜란드에는 두 부류의 화풍 화가가 있었다. 하나는 이탈리아 영향을 받은 소위 이탈리아 학파요, 다른 하나는 네덜란드학파이다. 첫째 부류의 특징은 웅장한 스케일로 역사 종교 주제를 중심으로 그렸다. 두 번째  화풍은 일상생활을 소재로 하여 그렸다. 렘브란트는 양편의 영향을 공히 받았다. 그러나 그 어느 쪽에도 속한 것은 아니었다. 이탈리아 화풍과는 달리 겸허한 처지의 보통사람들을 그렸다. 두 번째 학파와 또 구별 되는 것은 종교적 주제를 많이 다루었다 할 것이다.

 성경을 소재로 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는 아주 심층적인 것 심리적 위기를 담은 상황을 깊이 있게 그리고자 했다.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거부하여 난처한 처지에 있는 요셉의 곤혹스러움, 돌아온 탕자, 예수님 앞에 끌려온 간음한 여인, 그리고 여기 은전을 돌려준 유다의 비참한 처지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 당시나 지금이나 이런 소제는 잘못 오해받을 소지가 많은 것으로 가능하면 누구나 피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이런 함정을 알면서도 이를 그릴만큼 렘브란트는 진지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그림 속의 장면은 큰 무대처럼 설정되어 있다. 오묘한 빛과 어둠의 경건, 무언가 일어날 것 같은 불안. 놀람과 행동들은 마치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연상 시킨다. 삼각 구도로 배치된 인물들의 움직임은 각기 다르다. 그러나 누구보다 비참한 사람은 유다 그자신이다. 우측 하단에 그는 남루한 옷차림으로 꿇어 앉아있다. 그의 얼굴은 참담하고 이마의 머리칼은 흐트러져 있으며  분노와 함께 울음이 곧 터질 것 같다. 죄인의 모습은 이토록 괴롭고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우리도 기실 이런 모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석우 (경희대학교 명예교수, 역사문화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