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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역사로 보는 우리교회>1950∼60 년대

천막교회에서 시작된 ‘기적’

 

 1958년 5월 18일 저녁, 서울시 서대문구(현 은평구) 대조동 산기슭 최자실 전도사의 집 거실에서 조용기 전도사가 최자실 전도사와 그의 세자녀 성혜, 성수, 성광과 비를 피하러 온 할머니와 함께 첫 예배를 드렸다. 비록 사과상자에 보자기를 씌운 강대상 앞에서 5명에게 한 설교였지만, 그의 가슴 속에서는 타오르는 열정과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넘쳐났다.


  창립예배를 드린 날 온동네를 다니며 예배를 알렸으나, 결국 창립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은 고작 5명 뿐이었다. 교회가 시작되고 1개월 정도가 지난 어느 날, 조용기 전도사와 최자실 전도사는 7년 동안 중풍병을 앓고 있던 무성이 엄마라는 여인을 알게 되었다. 이 여인은 7년 전 아이를 출산한 이후 중풍병을 앓게 되었는데, 한번도 자기 발로 일어선 일이 없었다.


  두 전도사는 무성이 엄마의 머리에 손을 얹고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했고 몇 시간을 기도했을 때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무성이 엄마가 벽을 잡고 일어서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씩 걷기 시작했다. 무성이 엄마는 중풍병에서 완전히 고침을 받았고 건강한 몸으로 교회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처럼 조용기 전도사와 최자실 전도사의 피땀어린 기도와 헌신의 결실로 인해 성도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여 50여 명에 이르자 최 전도사의 집 거실이 좁아 예배를 드리는데 어려움이 따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듬해 봄 조용기 전도사와 최자실 전도사는 집 앞 마당에 천막을 치고 가마니를 바닥에 깔고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이후 천막교회는 부흥하여 점점 더 많은 성도들이 모이게 되자 최자실 목사가 해군 군용 천막을 구입하여 천막교회를 넓혔다. 1961년 1월 30일, 조용기 전도사는 입영통지를 받고 군에 입대하지만 훈련도중 탈장으로 인해 대수술을 받고 군에서 의가제대를 했다. 얼마 후 천막 대부흥성회가 열렸다. 이 부흥 성회는 거대한 구름떼 같은 사람들이 서울 전역으로부터 몰려들었다.


  1961년 10월 15일 부흥회가 열린 장소에 교회가 세워졌고 예배가 드려지게 되었는데, 이곳을 순복음부흥회관이라고 불렀다. 조용기 전도사는 1962년 4월 26일 목사 안수를 받게되었다. 그리고 그해 5월 13일 순복음부흥회관의 명칭이 순복음중앙교회로 바뀌게 되었으며, 이 무렵 교회 성도가 500명을 넘어서게 되었고 3년 후인 1964년에는 3000명에 이르렀다.


  교회는 나날이 폭발적으로 부흥을 거듭하여 성도 수가 만 명을 초과함에 따라 더 이상 성도들을 수용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새성전 건축을 위한 부지를 찾기 시작하였고 여러 곳이 부지로 거론되었지만 많은 성도들이 모이기에 적합한 장소로 여의도가 추천되었다.


  그래서 1969년 4월 6일 여의도 새성전이 착공되었다. 하지만 건축비가 너무 비싸므로 교회가 이 거대한 빚을 감당할 것 같지 않았으나, 하나님의 기적을 믿기에 조용기 목사는 그의 마음속에 불타오르는 소망을 가지고 수많은 어려운 문제들을 극복하며 성전건축을 추진하였다.

 

기사입력 : 2008.05.18. am 12:07 (편집)
성영목기자 (j1387@fg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