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의 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디모데후서 4장 6∼8절
저는 1958년 5월 18일 고 최자실 목사님과 함께 불광동 산비탈 깨밭에 천막을 치고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서대문으로 이전하고 또 여의도로 옮겨오면서 50년의 세월을 목회하고 이제 목회 일선에서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앞에서 제가 전도하면서 살아온 과거를 간결하게 보고 하는 시간을 가져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1.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바울 선생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말씀했습니다. 신앙생활의 시작은 영적인 전쟁의 시작이요, 목회의 시작도 영적인 전쟁의 시작입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마음의 갈등과 고통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 생활에 갈등과 고통이 많습니다. 마음속에서 영적전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사탄과 악의 영과 대결해서 싸우는 영적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가져온 3대 재앙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조상이 하나님을 반역한 재앙이 영적으로는 죽음이요, 생활로는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이마에 땀을 흘려 먹고 살며 육체적으로는 병들고 노쇠하고 죽게되는 3대 재앙을 이세상에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이세상 사람들은 죄로 말미암아 영혼이 죽는 재앙 아래서 살고 있습니다.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이마에 땀을 흘려 먹고 사는 생활고를 겪고 있습니다. 몸이 병들고 노쇠하여 죽는 재앙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재앙에서 우리를 구출해줄 자는 이천년 전에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 이땅에 오셔서 사시면서 사람을 대표해서 인간의 모든 죄와 저주, 죽음의 절망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올라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로 주시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적으로 용서와 의로움을 주시고, 물질적으로 축복과 번창을 주시고, 치료와 영생을 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50년동안 어떻게 목회를 했느냐고 많이 묻습니다. 물론 말할 필요없이 하나님의 성령이 제 손을 잡고 이끌어 주셨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99.9%고 제가 노력한 것은 0.1%도 안됩니다. 성령이 보혜사로서 붙잡아 이끌어 주셨는데 성령께서 가르쳐 주고 저의 손에 들려준 무기가 있습니다.
저의 희망의 무기는 삼중축복입니다. 성경은 “내 영혼이 잘됨 같이 내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말씀합니다. 전인구원에 대한 메시지를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불광동에서 개척할 때 사람들이 너무나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렸습니다. 직장도 없고 수입도 없고 내일에 대한 희망도 없고 좌절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이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범사에도 먹고 살게 해주시고 치료와 건강을 허락한다는 단순한 전인구원입니다. 아담이 전인타락을 가지고 왔으면 예수님은 전인구원을 우리에게 가져다준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1절은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들은 예수안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새로운 사람입니다. 죄에서 용서받은 의인으로, 저주받은 사람에서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으로, 병들고 죽을 사람에서 영생복락을 얻은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희망의 삼중축복이 제 무기였고 또 그 다음에는 긍정의 오중복음이 저의 무기였습니다. 인생은 해답이 없을 때 부정적이 되고 절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문제가 와도 대책이 서고 해답이 있으면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으로 살아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꿈꾸고 긍정적으로 믿고 긍정적으로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오중복음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몸찢기고 피흘림으로 제일 먼저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나와 회개하고 돌아서면 용서를 받습니다. 즉, 자기가 죄를 지어서 지옥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의 선물을 거부하기 때문에 지옥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해답이 있습니다.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모셔드리면 용서를 받고 의로움을 얻고 천국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성령 충만의 복음을 통해서 세상과 육체를 이기는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병든 자에 대한 신유의 복음입니다. 육체가 허약하고 병들었을 때 의사도 고치지 못하고 약도 치료가 안될 때 절망할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러한 경우에도 끝까지 절망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성경에 말씀하기를 “저가 채찍을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저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영과 마음뿐 아니라 육체의 치료가 들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모두다 하나님께 나와서 부르짖어 기도하면 주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시고 어떠한 병에서도 치료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축복의 복음인 것입니다. 저주와 가난에 몸서리칠 때 해답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복받은 사람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 우리가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가난과 절망에서 벗어날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가난과 절망에서 벗어나게 하셨고 저주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매달린 것입니다.
그리고 재림의 복음을 전합니다. 우리가 죽어 무덤에 들어가면 한줌 흙으로 돌아가고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안믿는 사람들이 억지로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마음중심에 초자연적으로 영원한 삶이 있고 저 건너편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누가 가르쳐주어 아는 것이 아닙니다. 양심이 그것을 말하고 있는데 무신론자들은 그것을 짓밟아 버리고 양심을 눌러버리고 있기 때문에 그 음성을 못듣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천국 아니면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죽고 승천해 주셨기 때문에 이제 그리스도가 강림하시는 날에 우리는 다 부활하여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 살 것입니다.
긍정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나가야 합니다. 이 땅에서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저는 눈에는 아무 것도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내 앞길이 칠흑같이 어두워도 십자가를 바라보면 죄에는 용서와 의를, 마귀의 유혹과 육체에는 성령의 역사를, 질병에는 그리스도의 치료를, 저주에는 아브라함의 축복을, 죽음에는 영원 불사의 부활과 영생이 임한다는 오중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창조적 삶의 4차원 영성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땅는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사는 사람들도 있고 ‘운명에 맡기자’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운명을 우리의 생각과 꿈, 믿음, 말속에 심어놓으셨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좋은 것을 예비해놓아도 입을 닫아 열지 아니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입은 우리가 열고 채우는 것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어떻게 입을 엽니까? 생각을 통해서 입을 열고 꿈을 통해서 입을 열고 믿음을 통해서 입을 열고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입을 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은 하나님이 찾아와서 함께하는 처소입니다.
잠언 4장 23절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했으니 우리는 생각과 꿈을 갖고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산들을 들리어 바다에 던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들의 생각을 통해 우리들에게 임하시고 우리들의 꿈을 통해 임하시고 우리들의 믿음을 통하여 역사하시고 우리의 입술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들의 생활속에 움직이는 것입니다.
2.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저는 이제 73살입니다. 저는 불광동에서 3년을 뛰었고 서대문에서 13년을 뛰었고 여의도와 세계선교를 위해서 34년 등 50년을 경주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생명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그 고통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날위하여 생명의 피를 흘려주었으니 나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필요하면 생명을 바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과 목회의 길은 장애물 경주입니다. 운동장에서 그냥 뛰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장애물을 놓고 뛰라는 것입니다. 장애물에 걸려서 넘어지면 크게 부상을 당하고 패배하고 마는 것입니다. 절뚝거리면 잘 뛰지 못합니다. 장애물 경주를 잘해야 됩니다.
저는 50평생 목회를 하면서 얼마나 수많은 장애물에 걸렸는지 모릅니다. 세상에 살면 죄의 유혹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끊임없이 죄가 장애물이 되어서 발을 걸고 넘어지며 달려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세상의 유혹의 장애물과 부귀영화 공명의 장애물이 있어서 그것이 발을 붙잡고 걸려넘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병고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마음과 몸이 병들어서 고통스러워 뛸 수 없게 낙심시키는 장애물인 것입니다. 생활고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먹고 살기가 힘들고 고통스러우니 복음증거도 다 집어 치워버리고 돈벌이나 하겠다 그런 생각을 한것이 한두번 아닙니다. 실망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낙심되고 실망하여 천지를 봐도 깜깜하고 살 길이 없는 그런 장애물도 있는 것입니다. 시련과 핍박의 장애물도 있습니다. 시련도 다가오고 수많은 내적 외적 핍박도 다가옵니다. 장애물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평신도는 평신도로서 넘어서야 할 장애물이 있고 주의 종은 주의 종으로서 뛰어 넘어야 될 장애물이 있는 것입니다. 장애물을 없애달라고 기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장애물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기도할 때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달라고 해야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면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죄악의 장애물도 세상의 유혹의 장애물도 병고의 장애물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생활고의 장애물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실망의 장애물도 시련과 핍박의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하고 성령의 손을 잡고 뛰면 장애물을 뛰어 넘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없이 장애물 경주를 하면 낱낱이 걸려 넘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3. 믿음을 지켰으니
믿음이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내가 믿고자 해서 믿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믿게된 것입니다.
유다서 1장 3절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고 말씀합니다. 순식간에 믿음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전도해서 귀로 듣고 마음으로 알지만은 믿음은 안들어 오다가 어느날 예배 드리다가 성경을 읽다가 설교를 듣다가 마음속에 믿음이 불꽃같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야고보서 1장 17절에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은 주시고 또 우리 믿음을 자라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6절에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믿음을 주시고 난 다음에 말씀을 통하여 그 믿음이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때, 설교를 들을 때, 전도하면서 말씀을 통하여, 때론 자라고 시련을 통하여 자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시련을 당해야 독자적으로 설수 있는 믿음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의 은사를 체험함으로 믿음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함으로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여러가지 영양분을 가지고 자랍니다. 여러가지 음식물을 먹어야 우리의 육체가 자라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말씀과 시련과 성령의 은사와 기도를 통해서 자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기 때문에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고 시련이 다가오면 하나님이 우리들을 금보다 더 낫게 만든다고 믿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를 굳세게 하시고 도와주시고 붙들어 주신 이가 바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붙잡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붙잡아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먼저 찾아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믿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셔서 우리가 믿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빌립보서 3장 12절에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 잡혔으니 더 예수님의 이름을 붙들려고 달려가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저는 이제 남은 여생 주님 부르심에 사명에 충실하고 주님의 강림하심을 간절히 기다려 신앙의 정조를 지킨 사람들에게 주시는 의의 면류관을 기다리며 살든지 죽든지 이삶에서 주님을 영광스럽게 하고자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제게 복을 주셔서 이영훈 목사같은 훌륭한 후계자를 세워주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모든 지교회 훌륭한 담임들을 세워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저는 뒤에서 그들을 축복해주고 위로해주고 격려해서 그들이 다 하나님이 사용하는 위대한 증인들이 되도록 기도하기를 쉬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