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은 사람에게 주어진 특권 하나를 꼽는다면 시간을 비교적 융통성 있게 운용할 수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뜻 맞는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 같은 것을 생각하거나 실천에 옮길 수 있다면 그 자체가 감사한 복이겠지요. 얼마 전 <좋은 생각>출판사 정용철 사장님과 함께 한 남도 여행이 바로 그랬습니다.
둘 다 신앙이 같고 둘 다 사진촬영에 취미가 있어서 서로 관심영역이 일치했습니다. 여수에서 낙도 순회 여객선을 타고 40분 남짓 가야 하는 조그만 외딴섬인데 이 섬에는 옛 공룡시대의 기묘한 지층과 공룡 발자국 등 촬영거리가 있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한 터였습니다. 듣던 대로 섬은 작았고 갯마을의 규모도 작았습니다.
가구 수라야 전부 스무 가구가 채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젊은이들은 대처로 다 나가서 노인들만 섬을 지키고 있는 형국이었습니다. 촬영일정을 시작하기 전에 우선 섬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민박집에 손가방을 내려놓고 돌담 골목을 천천히 돌아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우리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아∼’하고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잿빛 해변 갯마을 한 모퉁이에 아주 조그만 빨간 지붕 교회당이 숨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반가움에 가슴을 두근거리며 걸음을 빨리하였습니다. 조그만 종루가 있었고, 조그만 예배당이 있었고, 그리고 목사님의 사택이라 할 수 있는 아주 조그만 오두막집이 있었습니다. 대여섯 줄의 긴 걸상이 놓여있을 뿐인 조그만 예배당에서 우리는 감격에 겨운 채 두 손을 모으고 진심으로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세상에, 이 머나먼 외딴 섬에도 우리 주님의 집이 있다니!”
같은 십자가 종루라도 평소 도시에서 보던 교회당의 종루와는 확연히 다른 감사와 감동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평일이어서 마침 외출 중이신지 오두막이 비어 있어 목사님을 만나 뵙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이런 오지에서 시무하시는 목사님이야말로 우리 주님이 특별히 선택하신 목사님이 아니실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해풍에 검게 그을린 외로운 노인 몇 분 모시고 감사 찬송 드리는 아주 특별한 주일예배 광경도 어렵잖게 상상되었습니다. 촬영이니 공룡이니는 까마득히 잊어버린 채 우리는 오래오래 예배당을 떠나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그냥 내내 감사할 뿐인 조그만 섬마을 주님의 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