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7)
멤링의 작품은 15세기 네델란드 화풍의 총집합 
단순 소박하지만 압도적인 경건함 담아내
가장 큰 축복에 대해 스스로 묻게하는 그림  

 남캘리포니아 L.A.(Los Angeles)에는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다. 태양빛이 듬뿍 내려 쪼이고 공기가 맑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경관과 찾고 싶은 문화공간들이 기다리고 있다. L.A.에서 북동쪽으로 16㎞쯤 가면 파서디나(Pasedina)라는 조용하고 아담한 도시를 만나게 된다. 유럽의 고풍스런 거리를 연상시키는 주택들 사이사이에 키 높게 서있는 팜트리. 한적하게 뻗어나간 길들이 끝없이 걷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중심가에 열려있는 상점과 격조있는 레스토랑들이 또한 손짓한다. 그러나 이런 즐거움 외에도 그곳이 나를 매료시키는 또 하나의 큰 이유가 있다. 노턴 사이먼 미술관(The Norton Simon Museum of Art)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전시실외에도 뒤뜰의 조각공원,그 연못곁 카페의 정겨운 느낌을 잊을 수 없다. 나는 L.A.를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미술관을 꼭 찾으라고 감히 권하고 싶다.

 유대인 대기업가 노턴 사이먼(1907-1993)이 세운 이 미술관은 유럽과 아시아의 걸작들을 모아놓았다. 라파엘로, 보티첼리 등의 르네상스 미술과 중세의 이콘화들. 바로크시대의 렘브란트의 자화상과 다수의 판화, 고흐 ,고갱, 세잔느, 드가, 피카소 등의 정수들이 모였다. 특히 고흐의 ‘농부의 얼굴’, ‘어머니의 초상’을 비롯하여 드가의 생동하는 작품들은 결코 놓쳐서는 안될 명화들이다. 노턴 사이먼은 미술품을 수집하고 미술관을 연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예술이야말로 인간을 소통시키는 가장 중요한 형상이다. 나이를 넘어서, 문화를 넘어서, 국경을 초월하여…. 그것들을 보는 일은 즐거움을 주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를 훨씬 더 잘 이해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미술관 전체 컬렉션은 4000여 점(아시아 조각까지 포함)에 이르는데 1000여 점이 늘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 한스 멤링(Han Memling, 1440-94)의 “축복 하시는 그리스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나는 L.A.에 2개월반쯤 머무르는 행운을 누렸다. 그 동안에 6번을 이 미술관에 갔고 그 때마다 이 예수님상에 끌려 많은 시간을 그 앞에서 보냈다.

 한스 멤링은 15세기 후기 플란다스에 있는 부룩스(Bruges)지역의 아주 뛰어난 인물화 화가였다. 그는 본래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근처 젤리겐슈타트(Seligenstadt)에서 태어났다. 당시는 도시가 성장하고 무역이 발달하던 시기로, 신흥부르주아지들은 멤링의 경건하고 간결한 작품을 좋아했다. 기록에 따르면 멤링은 그 시의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한사람이었다. 요컨대 멤링의 작품은 15세기 네델란드 화풍의 총집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 보는 그림은 크지 않다.(38.4x28.3㎝) 그런데도 왜 사람을 강렬하게 붙잡을까. 우선 얼굴과 어깨 두 손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아무런 장식도 꾸밈도 없는 단순 소박한 모습. 인간적으로 그려져 있으면서도 압도적인 경건의 이미지를 띠고 있다. 평범 속의 우뚝한 성스러움. 응시하는 눈빛은 태초의 여명처럼 맑고 축복의 손길은 따뜻이 열려 있다. 화가 멤링은 예수님에 가장 가까운 형상을 그리게 해달라고 수없이 기도 했으리라.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하는 그림이다.

이석우 (경희대학교명예교수, 역사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