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마 26:42)
예수의 깊은 기도에 초점 맞추고 있어 
고흐가 가장 좋아했던 아리쉐퍼의 작품

 예수님의 겟세마네에서의 기도는 그의 생애를 모두 건 처절한 기도였다. 인간으로서의 고통어린 그의 최후의 모습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있다. 그에게도 인간적인 약점이 있다는 것을 그러기에 더욱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만일 그가 죽음 앞에서도 태연자약, 아무 고통도 느끼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를 주님으로 더 신뢰할 수 있을까. 가장 인간적인 면모 속에서 오히려 신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언제나 혼자였다. 끝내는 혼자인 그, 고통의 그, 고뇌의 선택 앞의 그 라는 생각이 든다. 겟세마네로 가는 길에 예수는 그를 따르는 자들이 그를 버리고 떠나리라는 것을 알았다.(마 26:31) 베드로조차도 그를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이라는 것을 엄숙히 예견하였다. 제자들은 아직도 칼을 생각하고(눅 22:35∼38) 세상 나라의 회복과 왕권을 누리는 예수님을 기대하고 있었을 터이니 더욱 그렇다. 인간으로서 최상의 고통, 공포, 절망은 죽음 앞에 섰을 때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함께 가는 세 제자에게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 26:38)고 당부했다. 

 그가 겟세마네 동산에 간 것은 죽음을 피하러 간 것은 아니다. 그는 가슴이 우울하고 무거울 때 하나님과의 대화, 기도를 하러 거기에 자주 갔었다. 예루살렘에 올라온 후 시내에서 편히 쉰 적은 없었고, 교외의 산이나(눅 21:37) 베다니(막 11:11)에서 보냈다. 그 점에서 그의 죽음은 궁극적으로 자발적인 선택이었다고도 하겠다. 죽음을 거부했다기보다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분별하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너무도 간절하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였다. 그 기도가 얼마나 절실하였는지 천사가 하늘로부터 나타나 예수님에게 힘을 보태 주었고(눅 22:43), 힘을 다하여 진솔하게 기도했기에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았다.(눅 22:44) 그런 다음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것임을 기도에서 드러내고 있다.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마 26:42)

 이 혼돈의 순간에도 예수님은 절제와 균형을 잃지 않고 있다. 만일 우리가 그와 같은 처지에 있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그는 그 같은 슬픔 중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그 점에서 우리들의 기준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가늠해서는 안 되며, 예수가 그의 바람을 하나님의 뜻에 예속시키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칼빈의 말은 옳다.

 이 그림을 그린 아리 쉐퍼(1795-1858)는 고흐와 같은 네덜란드인으로 대부분의 화가 활동은 프랑스에서 했다. 그의 대표작으로 ‘위로자 그리스도(Christus Consolator, 1837)’가 있는데 이는 고흐의 젊은 시절 가장 좋아하는 그림 중의 하나였다. 좌절과 소외 속에 있었던 그에게 이 그림은 큰 위로를 주었으며 그래서 이 복제품을 자기 방에 걸어 놓기까지 했다. 고흐는 그의 동생 데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 대해 미술관에서 본 그 작품이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다고 쓰고 있다. 네덜란드 개혁교회에서는 대부분 이 그림을 좋아했었고 고흐 아버지 또한 이를 애완하였다.

 그리스도는 깊은 고뇌와 통절함에 온몸을 맡긴 듯 영감에 차 있고, 길게 뻗은 기도의 두 어깨와 손은 간절함에 가득 찬 듯하다. 침잠하듯 심각한 그를 돕기 위해 천사가 안듯이 그를 붙들고 있다. 같은 주제의 다른 그림들과는 달리 쉐퍼는 잠에 떨어져 있는 세 제자들을 화면에 등장시키지 않았다. 그리스도만 그리고 화면 상부에 아몬드 같은 타원형으로 감싼 것은 예수의 깊은 기도에 초점을 맞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 그림을 보면서 그리스도의 무아지경과 같은 기도 자세에 깊이 흡인되어 가는 듯 한 느낌이었다.

 예수님의 절실한 기도와 잠든 제자들의 무력함 사이의 극명한 대비에서 왜 지난 여름 악몽의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가 다시 떠올려지는지 모르겠다. 들끓듯한 미움과 비난의 목소리가 아우성처럼 생생하다. 신앙의 일을 세상의 기준으로 가늠당하는 억울함도 있었다. 그러나 저들의 비난이 그 누구에게도 아니고 바로 내게 해당되는 사항이라는데 더 많은 괴로움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얘기하면서 나는 오히려 세상적 시장 논리에 붙잡혀 있지 않았는지…. 세상을 욕하지만 세습, 세금 문제, 맘모니즘에서 우리가 얼마나 자유로운지 의심스럽다. 진정 예수님이 가르친 대로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편에 있는지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다. 세상 사람이 선망하고 닮고 싶은 믿음과 행함이 온전히 조화된 성숙된 기독교인인가. 나의 신앙적 오만이 예수님을 교회 안에만 가두어 놓고 직장이나 가정이나 삶 속에서 외면하며 지나오고 있기에 부끄럽다.

 어떤 캠페인이나 행사가 마치 신앙 그 자체인 듯 혼동하고 있지 않은지 걱정스럽다. 무엇보다 한국의 기독교가 그리스도의 본 가르침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우려들이 지나친 괴민이었으면 한다. 나 자신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세상의 복락을 함께 추구하고 있는 현실주의자인 것이 더욱 괴롭다. 이 같은 회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크게 간섭하여 주시지 않으면 앞으로도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은 자신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은 더 있다. 불쌍히 여기소서.

이석우 (경희대 명예교수, 역사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