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엇이든 잘하는 멀티플레이어가 인기다. 만물상이라도 차린 듯 필요한 건 다 갖고 있고, 전파상 수리공처럼 뭐든 다 고칠 줄 알고, 툭 치면 지식이 줄줄 나오는 잡학박사 가 부서에 있으면 모두가 편하다.

 전자제품도 멀티구성이 인기다. 휴대전화로 사진도 찍고 음악도 듣고 동영상까지 본다. 밥솥도 세탁기도 워낙 기능이 많아 웬만해선 익히기 힘들 정도다. 팩스, 스캐너, 프린터 기능을 갖춘 복합기도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게 들어가면 한 분야 전문가와 단순한 기능의 명품이 훨씬 높이 평가받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멀티플레이어와 멀티제품의 운명은 묘하게 닮았다. 진정한 실력을 갖춘 고수가 나타나면 멀티플레이어는 찬밥신세가 된다. 복잡한 기능을 채 익히기도 전에 고장나서 푸대접받는 멀티제품은 별 수 없이 단순한 기능의 제품으로 교체된다.
 젊을 때는 팔방미인이 인기를 끌게 마련이다. 이것도 조금 저것도 조금 잘하면 본인도 지루하지 않고 다른 사람도 즐겁게 해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노닐다가 전문분야를 갈고 닦지 못하면 어느 틈엔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뭐든지 잘하는 건 축복이다. 하지만 자신의 진짜 재능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그걸 살릴 기회를 놓치는 건 재앙이다. 세상의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이느라 정작 자신의 재능을 지나쳐 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재능을 찾아내서 갈고 닦지 않는 건 사명을 방기放棄하는 일이기도 하다.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아마추어로 빙빙 돌다보면 고수의 길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내가 잘하고, 하면 할수록 열정이 생기는 일, 그게 뭔지 찾아내서 실력을 갈고 닦으라.   한 분야에 10년 간 종사하면 일가一家를 이루고, 20년이면 대가大家가 되고, 30년 이상 하면 입신入神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평생에 걸쳐해야 할 일, 주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일, 그것을 일찌감치 찾아서 고수의 대열에 들어가도록 노력하자.

이근미 소설가 www.rootl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