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방학 기간에 중고등학생들로부터 여러 통의 메일을 받았다. 이 학생들이 나에게 메일을 보낸 이유는 방학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중학생은 자신이 읽은 책의 저자에게 편지를 보내 답장을 받는 과제였고, 고등학생은 저자에게 책 내용과 관련하여 다섯 가지 질문을 던져 답을 받는 과제였다.

 처음 편지를 받았을 때 겨우 열다섯 살짜리가 두꺼운 책을 읽었다는데 고무되어 열심히 답장을 써주었다. 그랬더니 같은 반 친구들이 줄줄이 편지를 보내왔다. 숙제로 낸다니 내용을 서로 달리하여 길게 써주느라 애를 먹었다.

 여섯 명에게 나름대로 성의있는 답장을 보냈더니 두 명이 메일로 감사 편지와 함께 책 주인공을 그린 그림을 보내왔다. 두 친구에게 답장을 받고 나자 괜히 회신을 안한 친구들이 괘씸해 졌다. ‘아니 내가 그렇게 열심히 답장을 했는데 일언반구 반응도 없고 말야’라며 혼자 구시렁대다가 피식 웃었다. 따지고 보면 유명하지도 않은 내 책을 찾아서 읽어준 것만 해도 고마워해야 할 일이건만.

 프리랜서 기자로 오랜 기간 취재를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유난히 사람을 기피하고 자기를 숨기려는 유명인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특권의식 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다.
 길을 가다가 누구나 흘끔거리게 되는 김점선 화백의 경우 사인해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말그림까지 그려주고 기념촬영에도 편안하게 임한다. 유명 화가에다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냈고 TV 문화프로그램 진행까지 했지만 스타의식 따위에 빠지지 않아 자유로운 분이다. 

 얼마 전 MBC 김주하 앵커를 취재했는데, 그녀는 대학 다닐 때 김동건 아나운서를 찾아가 자신의 음성을 테스트 받고 앞날에 대한 조언을 구했단다. 굵은 목소리가 콤플렉스라는 그녀에게 김동건 씨는 “목소리는 바꿀 수 없지만 포장은 할 수 있다”며 용기를 주었다.

 유명인이 일개 대학생을 직접 만나 격려해주었다는 얘기에 학생들에게 메일 하나 보내주고 괜히 생색내려 한 나를 반성했다. 전혀 유명하지 않지만, 소탈한 유명인에게서 배울 점을 미리 꼽아봤다.

이근미 소설가 www.rootl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