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요 13:10)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의 모습  
그리스도의 영광을 성스러움 속에 그려내

 예수님이 잡혀가기 전날 밤이다. 저녁식사에서 포도주를 나누고 빵을 떼며 성찬식을 제정했다. 이어 새벽녘까지 고별사 같은 간절한 가르침과 기도가 뒤따랐다. 그것으로도 마음이 놓이지 않은 듯 제자들의 발을 씻기 시작하였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 13:4∼15)

 이 주제를 다룬 그림들이 여럿 있는데, 두쵸(c. 1225-1318), 브라운(1821-1893), 필사본들의 것들이 모두 베드로의 거부와 발 씻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것은 왜일까? 그림의 극적인 장면을 살리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베드로의 행태가 주님의 발 씻기 의도를 역으로 설명해주고 있는데도 있을 터이다. 그는 처음에는 너무도 황송해서 자기 발을 절대로 씻을 수 없다고 완강히 거부하였다. 그러나 발 씻기를 따르지 않으면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단호한 태도에 그의 반응은 어떤 것이었나? 자세를 완전히 바꾸어 발뿐 아니라 머리까지도 씻겨주라고 한다.

 이 두 가지 태도가 다 옳지 못한 듯하다. 첫 번째 태도는 겸허한 듯 하지만 주님의 깊은 의도를 헤아리지 못했다. 두 번째 행태는 이미 씻었기에 씻을 필요가 없는 부분까지 요구함으로 지금까지 이루어 온 것까지 부정하려 들고 있다. 우리는 왕왕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움을 순간 잊은 채 문뜩 주의 은혜가 어디 있느냐고 다시 물을 때가 있다. 도마를 거론할 것도 없이 나 같은 사람이 빈번히 일으키는 건망증이다.

왜 예수님은 하필 발을 씻으셨을까? 발은 사람의 몸과 그것을 밟는 땅(길) 사이의 중간 역할자이다. 그 발은 곧 먼지투성이가 되거나 시궁창에 빠지기도 한다. 이 먼지들은 세상에 살면서 더렵혀질 수밖에 없는 죄 된 삶을 은유한 듯하다. 아무리 깨끗이 씻어도 다시 쌓이고 그래서 씻고 또 씻겨야 할 죄처럼 말이다.

 내 자신을 돌아봐도 선함은 미미하고 회한과 아픔의 죄 된 삶이 주류를 이루어 온 듯하다. 인류의 역사 또한 죄의 역사, 피 흘림의 역사가 아니었는가. 가인의 아벨 죽임이, 로마 창건자 로물루스가 동생 레무스를 죽였던 일이 이를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인류의 족적은 전쟁과 살상, 파괴, 미움, 분열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물론 오늘의 편리해진 삶, 풍요로운 물질, 잘 가꾸어진 외양 등이 우리를 현란케 한다. 그러나 한풀만 벗기고 들여다보면 가난과 배고픔, 혹심한 빈부의 차, 동물성에 가까운 분방한 욕망과 성행태의 팽배 등 우리 문명에는 어두움이 짙게 내려져 있다. 메말라가는 인간성과 맹목적인 미움, 썩어가는 땅과 공기, 이라크에서의 무고한 민간인들의 죽음, 아프가니스탄 인질 납치와 참혹한 살해, 까닭 없는 집단 살상 등은 우리를 전율케 하고 있다. 

 너무 지나치게 어두운 면만을 부각시키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역사의 회오리 속에서 나는 죄인이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발의 먼지를 씻어내듯이 우리 죄의 씻김과 용서는 예수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그 때문에도 예수의 십자가상의 피 흘림이 역사적으로 현존해야 할 이유이다. 

 이 그림의 작가 안젤리코는 도미니크 교단의 수도사화가이다. 일생을 순백고결하게, 기도의 삶을 살았던 그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성스러움 속에 그려내고자 했다. 그림에 담긴 순수한 신앙의 강렬함이 19세기 영국의 전-라파엘 미술학파의 출현에 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였다.

이석우 (경희대 명예교수, 역사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