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 년 전 YMCA(당시는 ‘한국 청년부’라고 명칭)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을 때, 나의 할아버지(김상옥 열사)는 첫 회장을 지내셨다.  동대문 감리교회의 초기 교인으로, 영국의 피어슨 선교사와 함께 3.1 독립운동에 참여하셨던 그분은 그 후 일본 군인에게 잡히셔서 종로경찰서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셨다. 할아버지는 상해로 망명하셨다가 돌아오셔서 종로 경찰서를 폭파할 계획을 세웠지만 일행 중 한 명이 잡히면서 계획이 발각되어 버렸다.

 1923년 1월 효제동에서 500여 명의 일본군의 포위 속에 1000명의 일경과 10일 동안을 홀몸으로 싸우신 할아버지는 결국 34살의 젊은 나이로 순국하셨다. 29살에 청상과부가 된 할머니는 병에 시달리던 두 자식마저도 잃고 슬프고도 한 많은 세월을 보내야만했다.  그런 할머니에게 있어 그 당시 태어난 나는 세상의 어떤 보물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할머니는 며느리인 어머니 품에서 나를 빼앗다시피 하여 대신 키우셨다.  할머니에겐 내가 유일한 기쁨이었고, 나도 이 세상에서 나를 사랑하는 할머니가 제일 좋았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에게 할머니는 정말 참기 힘든 호된 시어머니셨다. 게다가 할머니는 천국으로 가시기 전 중풍으로 인해 몇 년을 누워계셨다. 어머니는 그런 시어머니의 소변과 대변을 받아내는 것은 물론 밥을 떠먹이는 일까지 하루 하루가 고되셨다.

 내가 어릴 때는 가정용 청소기나 세탁기, 냉장고가 없었다. 그때 겨울은 지금의 겨울보다도 더 추웠다. 어머니는 그때 대식구의 빨래를 잔뜩 머리에 이고 그 추운 겨울날 개울가로 나가셔서는 옆에 작은 모닥불을 피우시고, 얼어버린 개울물에 그 많은 빨래를 하셨던 것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현재 우리가 이렇게 호강하는 것은 어머니들이 그 어려운 시절에 가정을 지키며, 자녀들을 잘 돌 보아 주시며 참고 견뎌 주신 은혜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때의 어머니들은 오늘날의 젊은이들처럼 속이 상하다고 혹은 시어머니의 시집살이가 고되다며 가정을 버리지 않으셨다.

 나이 드신 할머니들이나 교회 권사님들의 옛날 이야기를 들어보면 누구나 비슷한 슬픈 사연들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혹독한 일제 시대와 비참했던 한국전쟁,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고 입을 옷도 없었으며 자녀가 병들어도 약 살 돈도 없었던 그 시절.

 더 나아가 젊은 여자에게 빠져 정신 못 차리고 집안 일은 아예 돌보지도 않으며 술과 담배, 노름에 지쳐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누워만 있던 희망이 없어 보이는 남편, 게다가 시어머니의 시집살이까지.

 병든 부모에, 많은 자녀를 돌보느라 우리 어머니들은  손발이 다 닳아 지문조차 지워져 버렸다. 나의 어머니도 그 옛날 일들을 말씀하실 때는 항상 눈물을 흘리신다. 너무나 견디기 힘들어, 하루에도 몇 번이고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하신다. 나의 어머니가 그 고난의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삶을 포기해 버렸다면, 혹 우리들을 두고 도망이라도 가버렸다면, 우리 다섯 남매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나이 들고 엄마가 되고 보니 우리 어머니를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저리도록 감사가 나온다. 고통의 세월을 잘 이기도록 어머니께 힘을 주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만약 오늘날 젊은 어머니들에게 이와 같은 혹독한 인생을 살라고 한다면 과연 몇 명의 어머니들이 가정을 지킬 수 있을까? 지금 우리 삶의 환경은 전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하고 살기 좋다. 그런데 왜 젊은 엄마들은 이 작은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가정을 포기하고 자녀들을 버려야만 하는가.

 자식을 버려두고 행복을 찾아 나간다고 진정한 행복이 다가올거라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자식과 가정을 버린 후의 행복은 결코 오지 않는다! 우리는 지혜롭게 생각해야 한다. 나의 시간과 인생, 건강을 다 허비하고 깨닫는 자는 어리석고 미련한 자요, 인류의 역사를 보고 남의 경험을 통해 깨닫는 자는 현명한 자이다. 

 손등이 다 쪼그라들고 얼굴에 주름이 가득 잡힌 우리의 늙어버린 어머니들에게 젊은 엄마들은 겸손한 마음으로 배워야 한다. 어떻게 우리의 어머니들이 그 호된 세월을 꿋꿋이 잘 견디었는지, 그분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한다. 그들이 자녀들을 품에 안고 소리 없이 흘린 눈물이 강과 바다가 되어, 오늘날 대한민국을 든든히 세우는 기초가 되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늙으신 어머니를 진심으로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말하자. 우리 어머니들이야 말로 대한민국을 지켜낸, 진정한 독립투사들이 아니신가! 이 시간에 진심으로 자랑스러운 대한의 어머니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당신이야 말로 대한민국을 지켜낸 진정한 독립투사들이십니다”

김영실 교수(총신대 사회교육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