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연단학교, 축복의 통로였죠”
가족들 병 고침 체험하며 신앙도 쑥쑥 자라
우리 가정에 질병으로 인한 시험은 10년 주기로 찾아왔다. 우리는 그 시험을 잘 견뎌 더욱 견고한 믿음을 갖게 되었고 신앙의 성숙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 첫 시험은 신앙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 보름이 막 지났을 때 아이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경기를 일으켰다. 놀란 우리 부부는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았지만 원인은 찾을 수 없었다. 원인을 알지 못하니 병원에서는 손도 쓰지 못하고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막 신앙의 걸음마를 뗀 나는 아이를 위해 목숨을 걸고 기도했다. 아이의 경기는 나와 구역식구들의 끈질긴 기도로 씻은 듯이 나았고, 가족 모두가 하나님을 영접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 후 10년 가량이 지나 이번에는 남편의 눈에 녹내장이 생겼다. 병원에서는 시급히 수술을 하지 않으면 실명할 수 있다며 수술날짜를 잡았다. 녹내장에 대해 이것저것 의사에게 물어보았지만 대안은 수술 외에 찾지 못했다. 나는 당연히 수술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남편은 “기도원에 다녀오겠다”며 짐을 꾸려 집을 나섰다. 그리고는 사흘을 금식하며 하나님께 매달렸다. 기도원에서 내려온 후 우리가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정상으로 돌아온 남편의 눈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할 수 없었다.
10년 후 이 시험은 내게 찾아왔다. 나는 매년 건강검진을 통해 내 몸의 상태를 체크했다. 2005년도 예외는 아니었다. 건강에 대해 별 걱정이 없던 내게 의사는 유방암이라고 했다. 의사는 “초기라 수술로 완치될 수 있다”고 했고, 수술은 그의 말대로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안도의 숨을 내쉬기도 전인 2006년 초 또 다른 진단을 받았다. “난소와 목에 혹이 있으니 제거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다시 수술을 받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을부터는 양어깨를 짓누르는 통증이 찾아왔다. 통증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잠을 자기도 힘들었다. 나는 교구식구들에게 기도를 요청했고, 스스로도 기도에 열심을 냈다.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아프면 잠을 포기하고 일어나 기도했다. 올해 3월 초 수요예배 때였다. 조용기 목사님이 신유기도 후 헌금기도를 위해 강단에 오르셨을 때 “잠을 못 이룰 정도의 어깨 통증을 갖고 있던 사람이 나았다”고 하셨다. 선뜻 내 응답이라고 받지 못한 나는 “하나님, 어느 선한 사람의 기도응답인지 모르겠지만 나도 그 응답 안에 끼워주세요”라고 했다. 약한 믿음이었다. 그럼에도 그 날로 어깨통증은 사라졌다.
시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깨통증이 사라지기 무섭게 목이 잠겨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지난해 수술했던 경험도 있고 해서 급하게 집 근처 이비인후과 병원을 찾아갔다. 의사는 “혹이 재발했다”고 했다. 산을 넘어 다시 산을 만났다. 걱정을 안고 있을 때 교구장님이 “작정기도를 하자”고 했다. 목이 좋지 않았지만 이 말에 순종해 지역식구들과 함께 사순절 기간 동안 작정기도를 드렸다. 작정한 40일이 다 되도록 목 상태는 변함없었지만 다 나은 내 모습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작정기도를 마치고 나니 목이 완전히 잠겨 어떤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집 근처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혹이 줄었지만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지난해 수술을 받았던 대형병원에 예약을 했다. 며칠 후 만난 의사는 “목이 부어있을 뿐 혹은 없다”고 했다. 할렐루야.
소망하기는 병으로 인한 고난의 터널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와 우리가족을 치유하신 야훼 라파 하나님을 만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