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놀데 (1867∼1956)의 ‘최후의 만찬’ (1909)

“이것은 … 언약의 피니라” (마 26:28)
유월절날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식사 
그림 중심은 예수님이 두손으로 꼭 붙들고 있는 잔
인류구원 위해 피와 살 나눠주신 그리스도 사랑 상징

 최후의 만찬은 예수님이 붙잡혀가기 전날 밤 목요일에 이루어진  마지막 식사이다. 그리스도는 저녁을 먹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었다.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 피의 기도 후에 그는 붙잡혀갔다. 그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에 이른다. 이 엄숙하고 장엄한 슬픔의 이별 장면을 떠올리면 온 몸이 떨리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슬픈 운명을 제자들은 여전히 절감하지 못했다. 예수 혼자 그것을 환히 보듯하면서 홀로 견뎌내야 했다.
그 밤 저녁 식사에서는 두가지 큰 일이 벌어진다. 하나는 배반의 예고(26:21∼25)이고, 다음은 만찬을 제정(26:26∼30)하는 행사이다.

 그들이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넘겨 줄 것이다” 그러자 그들이 몹시 슬퍼하며 각각 그 분께 말하기 시작하였다. ‘주님, 저입니까?’ … 그들이 먹고 있었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고 축복기도를 드리신 후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며 말씀하셨다. 받아서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또 잔을 들고 감사기도를 드리신 후에, 그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너희 모두 이것을 마셔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도록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 이제부터 나는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이것을 새것으로 마시는 그날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이것을 결코 마시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찬송하며 올리브 산으로 갔다. (마 26:21∼30)

 이 저녁 만찬이 유월절날 밤에 이루어졌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구출받은 일을 기억하며 이를 기념하여 행하는 절기이다. 예수께서는 이 행사에서 희생양이 양을 대신한 자신임을 분명히 했다. 그 피를 통하여 죄를 사하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새로운 의미의 약속과 언약을 이 빵과 포도주를 나누며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 일은 십자가 상에서 일어날 죽음의 일을 다른 형식으로 행한 것이 아닐까. “너희 모두 이것(포도주)을 마셔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도록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힘주어 말하는 대목에 깊이 내재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의 배반의 예고를 다룬 대표적인 작품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다. 그리고 성찬 제정을 다룬 아우라도 여럿 있지만 이들 작가 중 대표적인 것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놀데의 ‘최후의 만찬’이 아닌가 싶다. 이들 두 작품을 비교하면서 보면 더 재미가 있다.
다빈치의 것은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라 그라지에 수도원 식당 한 벽면을 다 차지할 만큼 거대하다.(439×859cm) 정면으로 놓인 길고 큰 식탁 중앙에 예수 그리스도가 자리잡고 있다. 그가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라는 충격적인 경고를 했을 때 단연 온 방은 출렁이는 혼돈으로 가득 찼다.

 예수님 양쪽에 세 사람, 세 사람씩 모두 네 무리의 열 두명이 각기 다른 제스쳐로 놀라고 당혹해 한다. 이 장면의 인간 행위의 외양의 표출과 내면의 연결은 천재만이 그려낼 수 있는 장면. 다만 예수만 침착 안정되어 있고 신위의 품격을 지닌다. 다빈치가 가장 안정된 정삼각형의 구도를 그에게 적용한 이유이다. 그 옆의(우리가 보아 왼쪽) 유다는 어떤가? 그곳에 있으면서도 그만이 다른 동료들의 일반적인 움직임과는 동떨어져 보인다. 몸이 뒤로 젖혀져 있어서 불안한 역삼각 구도이다. 다만 그의 손만이 예수님 손에 가장 가까이 가 있어서 조금 뒤에 함께 접시에 손을 넣을 것 같다.

 이제 놀데의 것으로 가 보자. 우선 놀데가 다루는 성만찬은 좁은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다빈치가 넓고 견고한 공간과 건물을 택한데 반해 마치 다락방에서 비좁게 어깨를 비비며 앉아 있는 듯하다. 제자들은 예수의 주위를 빙 둘러 싸듯해서 아주 밀착된 느낌이다. 화면 중앙에 앉아 있는 예수는 자기 몸을 내어 주려는 죽음을 각오한 자답게 비장하다. 그러나 그림의 중심은 그가 두손으로 꼭 붙들고 있는 잔, 성배에 눈이 모아지게 함으로써 이 그림의 중심의도가 무엇인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를 통해 그의 피와 생명을 내어 주어 인류의 죄를 씻고자 하는 사랑을 상징한다. 그점에서 적어도 놀데에게 유다의 배신 행위 예고보다 성찬의식이 더 중요하다. 

 다빈치의 것은 멀리 바라보는 듯한 공간감, 그로 인해 거리를 느끼게 한다. 반면 놀데는 약간 위에서 내려다 보는 듯한 시점을 택하고 있다. 그리고 다빈치의 그림에서 식탁에 음식이 가득 놓여 있었다면 놀데의 식탁에는 아무 것도 놓여 있지 않다. 그럼에도 예수의 붉은 옷 노란 얼굴, 파란 녹색의 식탁 등의 대비색과 강렬한 원색들이 인간의 원초적 순수성을 타는 듯 드러내고 있다. 이 그림을 그릴 때 그는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깊은 감정의 몰입에 빠져 들었던것 같다. “나는 그림을 그리며 밤인지 낮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웠다. 내가 인간인지 아니면 단순히 그리는 자 인지도  구별이 되지 않았다. 잠자리에 가서도 그림이 보였지만 밤중에도 이와 대면해 있는 내가 되고, 아침에 일어나면 다시 그림과 대면하고 있었다”라고 회상할 정도였다.       

이석우 (경희대 명예교수, 역사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