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주어로 하는 ‘나-메시지’ 습관화 돼야 인정·자제·선택·화해의 단계거쳐 해결
대부분의 사람들은 1주일에 3∼4일은 ‘화’라는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그 화는 과거의 일에 대한 ‘화’일 수도 있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화’일 수도 있다. 사실 중요한 건 ‘화’의 대상이나 시점이 아니라 오히려 화라는 감정 그 자체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중요한 문제이다. 개인의 성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사소한 일에도 유난히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있다. 적당한 화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스트레스를 푸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벌컥벌컥 화를 내는 사람은 상대방을 난감하게 만든다. 화를 내는 이유는 상황마다 환경적인 요인이 많겠지만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의 신경정신과 전문의 앤드리어스 마이어-린덴버그 박사에 따르면 사람과 동물의 충동적 공격성과 연관이 있는 ‘모노아민 옥시다제 A’라는 변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분노와 두려움을 관장하는 뇌 부위가 보통사람보다 작아 화를 더욱 잘 내게된다고 한다. 이 때문에 뇌 부위의 활동성은 더 강한 반면 충동적 반응을 억제하는 능력은 약하므로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화를 낸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의사협회의 보고에 따르면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보통 사람보다 사망률이 20%나 높고 위궤양과 대장염 환자들 대부분은 성격이 급하거나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생리학자 존 헌터는 분노, 질투, 독선의 감정을 품으면 심장의 혈관이 압박을 받아 심장병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화는 함부로 표출되거나 무조건 억제하기 보다는 세련되게 다스려져야 한다. 스피엘베르거는 분노의 표현 양상을 표출, 억제, 통제의 세 유형으로 나눴다. 분노 표출은 화가 나면 겉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욕하고 화난 표정을 짓고 말다툼과 과격한 행동을 보인다. 분노 억제는 화가 나면 오히려 말을 하지 않거나 사람을 피하고 남을 비판하는 경우다. 분노 통제는 화가 난 상태를 자각하고 조절하면서 진정시키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과 의사나 심리 상담사 등의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화가 난 상태에서는 ‘일단 하던 것을 멈추라’고 주장한다. 화는 감정이기 때문에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잠깐 산책이라도 하면 극한의 순간은 넘길 수 있고 돌이켜 생각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는 것이다. 자신의 화를 ‘들여다보는 것’은 이때부터다. 우선, ‘정당한 화’인지 ‘필요한 화’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정당하고 필요하다면 화를 표현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싶은 내용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고 이를 전할때는 반드시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내가 어떻게 상황을 인지했는지’ 처럼 나를 주어로 하는 ‘나-메시지 (I- message)’로 표현해야 한다. 상대를 주어로 하는 ‘너-메시지(You- message)’를 쓰면 자신의 감정에 대한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시키고 자신의 문제를 상대방의 문제인 것처럼 표현해서 관계를 왜곡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개인의 상황과 성숙도에 따라 화 내는 방법은 천차만별의 반응이 나타나겠지만 화는 모든 불행의 근본이다. 살면서 화를 내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화를 품고 사는 것은 마음속에 독을 품고 사는 것과 같다” 여자들은 화를 참아 병이 생기게 되고 남자들은 화를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린 때로 화가 풀렸을 때 안도감을 가지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경험한다. 즉 화를 다스리면 몸 속이 해독된다. 그래서 “화가 풀리면 인생도 풀린다”라는 말도 있다. 화를 다스릴 때 다른 사람이 왜 화가 났는지 이해하게 되고, 미움이나 증오, 절망 등의 감정에서 자유로워질수 있다. 화는 아이와 같아서 계속 관심을 가지고 돌봐줘야만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다. 신체 장기와 같아 함부로 떼어낼 수 없는 화, 마음의 상처에서 생겨 끝내 습관이 되고 마는 이 화를 인정하고 찬찬히 들여다보고 결국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선 이 화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성경은 아무리 올바르고 의로운 거룩한 분노라고 할지라도 하루를 넘기지 말라고 권면한다. 그것이 계속되면 죄가 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분노 자체는 그 사람의 인격을 파괴하는 죄를 짓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이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 4:26∼27) 즉 예수를 믿으면서도 쓸데없이 화를 잘 내는 것은 아직도 쓴 뿌리가 남아있고 과거의 습관이 남아있는 것이어서 그리스도인의 새 성품이라 할 수 없다. 분노의 깊은 언저리에는 치유받지 못한 상처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상처받은 경험이 없을순 없다. 하지만 상처의 원인을 올바르게 치유받지 못 했을 때 그것이 헐벗은 욕구로 내려앉아 때로는 화로 표현되고 때로는 우울증으로 나타나게 된다.
빌리 그레이엄은 “성경은 불만을 금하지는 않았지만 두 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첫째는 분노를 악독, 원한, 증오로 발전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둘째는 자신의 악한 감정을 다스리고 있는지 매일 점검하라는 것이다.
게리 채프먼은 분노에서 사랑이 담긴 긍정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방법 5단계를 제시한다. 첫째, 화났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정말 화났어! 이제 어떻게 해야지?”하고 소리내어 말하라는 것이다. 둘째, 즉각적인 반응을 자제하라. 즉 말이나 몸으로 화풀이하거나 뒤로 물러서서 침묵하는 두가지 파괴반응을 자제하라고 말한다. 셋째, 분노의 원인에 초점을 맞추라. 어떤 말에 화가 났는가? 분노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어서 만일 그사람이 정말 잘못했다면 어떻게 잘못했는지 확인하라. 그리고 나서 잘못이 어느 정도 심각한지를 판단하라는 것이다. 넷째, 어떻게 반응할지를 선택하라. 자신이 선택하려는 행동이 잘못을 처리하고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지 즉 그 사람과 사랑으로 대면하고, 그 문제를 그냥 지나쳐 버리겠다고 의식적으로 결단하라는 것이다. 다섯째, 화해를 선택하라. 잘못을 문제 삼지 않기로 결정했다면 하나님께 아뢰라. 분노를 일으킨 그 사람을 하나님께 맡기고 분노를 하나님께 기도로 풀어 놓으라. 만일 잘못한 사람과 사랑으로 대면하기로 했다면 용서함으로 부드럽게 대면하라는 것이다. 성경은 아무리 의롭고 올바른 분노라 할지라도 그 분노를 통해서 마귀는 죄짓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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