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서 붙잡아 주신 주님
간·쓸개·췌장암 예배와 기도로 이겨
체력회복 후엔 금식기도 능력 체험
오늘날 한국교회 금식기도원의 대명사가 된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서 이윤선 집사를 만났다. 이 집사는 지난 2004년 3월부터 2년 가까이 기도원에서 살았다. 그렇게 기도원에서 살며 금식기도의 능력을 체험했고, 1년 365일 기도소리가 끊이지 않는 기도원이 너무 좋아 집도 인천에서 기도원이 있는 파주로 옮겼다.
2003년 11월 이 집사는 갑자기 배가 아팠고, 아픈 배는 자꾸 불러왔다. 이 집사와 남편의 관계가 좋으니 주위에서는 “늦둥이를 가졌나보다”고 했다. 불러오는 배는 계속해서 커졌고 가라앉을 줄 몰랐다. 몸에 이상신호가 오니 병원에 가야했지만 운영하던 식당에 손님이 많이 몰려 병원 갈 시간도 잡지 못했다. 차일피일 미루다 2004년 1월말 병원을 찾았다. 배는 임산부에 견준다면 만삭의 배만큼이나 커졌다. 병원방문을 더 이상 미루지 못한 이유였다.
검사는 신속하게 진행됐고 결과도 빨리 나왔다. 의사는 “암”이라고 했다. 그것도 간과 쓸개, 췌장 모두에 암이 있고 말기라고 했다. 의사는 “앞으로 2개월을 넘기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진단을 인정할 수 없었기에 더 큰 병원에 찾아가 다시 검사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가졌지만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낙심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 집사에 비해 막내딸은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막내딸은 “엄마, 어차피 두 달 밖에 살지 못할 거라면 기도원에 가서 하나님 만나고 천국에 가자”고 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했다. 20년 이상 신앙생활을 해온 그였기에 “이 전의 신앙생활은 단순히 교회 뜰만 밟은 것 같았다”고 했다.
이 집사는 2004년 3월 딸과 함께 기도원으로 갔다. 등 떠밀려 도착했지만 막상 성전에 들어가니 오기가 생겼다. 밀려오는 통증으로 10분 이상을 집중하기 힘들었지만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갖고 예배드렸고, 기도했다. 이 집사는 기도원 목회자들에게 기도를 요청하고 한 차례의 예배도 놓치지 않는다는 각오로 예배와 기도에 힘을 다했다. 그렇게 보름이 지났다. 휴식시간, 화장실에 갔을 때 핏덩이들을 쏟아냈다. 혼자서는 수습할 수 없어 딸을 불렀고 상담실에 찾아가 물어봤다. 목회자들은 “하나님이 치료해 주심을 믿고 포기하지 말고 계속 기도하자”고 했다. 그렇게 핏덩이들을 한 주일 정도 쏟아내자 불렀던 배가 예전과 같이 돌아왔다. ‘두 달을 넘기기 힘들다’고 했기에 기도원에서 죽을 각오를 하고 왔는데 예정된 2개월을 넘겼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자 목회자들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오라”고 했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처음 그에게 암을 진단했던 병원을 찾았다. 검사를 마친 의사는 “암이 없어졌다”며 “그 동안 무슨 약을 먹었냐?”고 했다. 할렐루야.
검사 후 집으로 가지 않고 이 집사는 다시 기도원으로 갔다. “고맙고 감사해 집으로 갈 수 없었다”고 했다. 다시 예배와 기도에 힘쓰며 6개월을 보냈다. 목회자들의 권면에 따라 또다시 병원에 가 검사를 받았고 의사는 “더 이상 오지 말라”고 했다. 그후 기도원이 좋아 앞서 말한 대로 기도원 근처로 거처를 옮겼다. 이때부터는 그 동안 체력이 되지 않아 하지 못한 금식기도에 돌입했다. 3일, 7일, 21일, 40일을 수시로 금식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다. 위기에 놓인 시누이와 시어머니를 위해 금식하며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해주셨고, 이는 가족구원을 가속화시켰다.
“지금의 저를 보고 사람들은 3년 전의 제 모습을 상상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직접 그 일을 경험한 저는 다릅니다. 두 달밖에 살지 못한다는 그 말은 한순간도 잊을 수 없을 겁니다. 덤으로 주신 생명이기에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그렇게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