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선교여행 차 독일 베를린에 간 적이 있다. 어느 한국식당에 들어가 된장찌개를 시켰는데 그 모양과 맛이 60년대 초반의 음식 그대로였다. 그제야 한국음식이 그동안 여러 모양으로 변천되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물어보니 식당주인이 이곳에 이주한 시기가 40년 전 바로 그때였다는 것이었다. 음식의 맛뿐만 아니라 언어습관 그리고 사고방식조차 그 당시 그 모습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있었다는 것은 그들과 잠깐 동안의 대화로만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6년 전 시카고에 가서 느낀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그곳에서 사시는 교민들이 이민 왔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에 신기하기조차 했다. 60년대에 오신 분들은 그때 당시의 모습으로, 70년대에 이민 오신 분들은 또 그 나름대로의 모습 그대로였다. 입고 있는 옷과 넥타이 그리고 그들의 사고의 구조도 대체적으로 그러했다. 빠듯한 이민생활에서 집과 직장 혹은 사업장, 그리고 교회라는 삼각형의 구조 속에서만 살다보니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어슴푸레 느끼게 되었다.

 서울로 돌아와서 나도 혹시 6년 전의 모습으로 굳어져 있는 것은 아닌가? 뇌경색, 간경화 등 육체의 굳음도 무서운 질병이지만 마음의 굳음은 얼마나 더 큰 병인지… 생각이 굳어지지 않기 위한 필사적 노력의 일환으로 늘 새로 나온 책도 많이 읽으려고 하고 젊은이들과 대화할 수 있기 위해 신조어(新造語)도 많이 배우려 한다.

 작년에 방문하고 돌아온 도미니카의 ‘다리 밑 교회’의 선교현장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3,40년 전 당시 서울의 변두리로 통했던 무악, 행촌동, 신림동, 봉천동 일대의 모습보다 더 열악한 곳이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아주 먼 옛날로 되돌아온 듯 한 느낌이었다. 언제 범람할지 모르는 강의 양옆에 즐비하게 차려져 있는 빈민촌, 어느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우범지대에서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은 양철로 된 벽과 지붕, 맨흙으로 된 바닥 거기에 침대 같이 만든 허술한 잠자리, 그리고 설거지를 하다만 그릇들로 가득 찬 싱크대가 눈에 뜨였다. 즐비하게 늘어선 판자촌 앞, 비탈진 그 좁은 골목마다 바글바글한 아이들 중에는 한국의 겨울에도 맨발로 돌아다니는 장닭같이 신발도 신지 않은 아이들이 더 많아 보인다.

 그러한 곳에서의 선교사역은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식 같아 보였다. 물론 “지금보다 더 나은 세계가 있다. 이곳 교회 출신 인물들 중에는 대통령도, 재벌도, 세계적인 운동선수나 음악가가 나올 수도 있으며 또는 기독교 역사를 바꿀 선교사의 배출도 가능하다. 눈에 보이는 현실에 얽매이지 말고, 앞으로 다가올 내일에 대한 꿈을 꾸어라. 내가 꿈을 꾸기 시작하면, 그 다음엔 꿈이 나를 만들어간다”라는 외침 외에 달리 다른 것으로 전할 것이 없었다. 설교를 끝내고 나니 통역한 선교사님도 그들에게 주는 자신의 메시지도 늘 꿈에 대한 것이라 한다.

 미국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6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보니 20년 전 홍콩에서 사역을 마치고 일본으로 임지를 옮겨 왔을 때의 느낌이었다. 20여 년 전 일본의 모습은 한국에서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꿈 자체였다. 그러나 그 꿈같던 이야기는 지금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아니, 어느 분야에서는 일본보다 앞서는 것도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의 일본은 우리나라의 미래였던 것이다. 이제는 한국이 일본을 앞서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선뜻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교지에서의 짧은 일정을 모두 마치고 시카고에 돌아와 나는 외쳤다. “Now, I've come BACK TO THE FUTURE of Dominican Republic!” 미국의 지금 모습을 도미니카의 미래로 생각했다면 그것은 단순한 망상(妄想)이었을까? 가난이라는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얽매인 그 오지에서 순수한 비전을 갖고 수고하시는 선교사님 내외의 꿈이 그 땅에서 현실화 될 것을 꿈꾸어본다.

김용준 목사(강북성전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