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너(Henry Ossawa Tanner), 제자들이 물위를 걷는 예수님을 보다(1907)

“주님은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마14:33)
달빛 위에 떠있는 배, 믿음의 초월성 느끼게 해
인생의 항해가 예수님 목표로 하고 있음 보여줘
                       
 여행은 그 자체로 해방감을 준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것 또한 얼마나 큰 즐거움인가. 이번 미국 여행 중 중서부의 광활한 자연의 맛과 곳곳에 포진한 미술관을 방문하는 기쁨 또한 각별하다. 대외적으로 크게 알려져 있지 않은 미술관에서 주옥같이 빛나는 작품을 만나는 기쁨은 더욱 크다. 

 아이오와(Iowa)의 주도에 있는 드모인 미술관(Des Moines Art Center)의 방문은 예기치 않은 보람이자 소득이었다. 미술관은 숲속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첫 전시실에 들어서자 입구 우편벽을 가득 채운 암청색 이미지의 커다란 작품(130.8 x 106.7cm)이 나의 잠든 감성을 일깨웠다. 강렬히 비추이는 달빛위에 무심히 떠있는 배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것은 깊은 신앙인만이 표현할 수 있는 어떤 믿음의 초월성 같은 것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가까이 가서 본 작품의 제목은 놀랍게도 “제자들이 물위를 걷는 예수님을 보다”(The Disciples See Christ Walking on the Water)였다. 작가는 미국인 타너(Tanner, 1859-1937)로 뒤에 안 일이지만 대표적인 흑인작가라는 데 다시 놀랐다. 

 그가 다루고 있는 물위를 걷는 예수님에 대한 성경의 기록(마 14:22-33)은 이렇다.
 사람들을 보내신 후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러 홀로 산 위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저녁 때까지 그곳에 혼자 계셨습니다. 배는 이미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였습니다. 제자들은 큰 파도와 거친 바람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새벽 3시에서 6시 사이에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렸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비명을 지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얼른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심해라! 나다! 두려워 하지 마라” 베드로와 예수님이 배 안에 오르자, 바람이 잔잔해졌습니다.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께 경배하며 말했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 14:23-33)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의 기적은 그의 공생애 활동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에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우선 빵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5천여명의 무리를 먹이고 따르는 자들이 구름떼처럼 모이고 있었다. 이 물위의 이변에 이어 베드로의 “주님은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 16:16)라는 고백을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이때였다. 이어 예수님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견이 뒤따랐고, 변화산에서의 영광스러운 모습에로의 변화가 행해졌다. 

 이런 중에도 그가 무리를 피해 홀로 산 위에 올라가 기도하였고 그것도 저녁 때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서였다. 물위를 재촉하여 걸어야할 만큼 바쁜 일정인데도 홀로 남아 긴 기도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가 정녕 주목해 보아야할 부분이다.
 타너는 1859년 피츠버그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에 필라델피아로 이사했다. 아프리카 감리교 감독파 감독을 아버지로 둔 그는 소위 신세대 니그로(New Negro)에 해당된다. 다시말해 교육에 접할 수 있었고 자신들의 취향과 꿈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된 흑인 첫 세대란 말이다. 타너 자신도 노예로부터는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경제적으로나 기회의 면에서 어려움을 겪고있는 가난한 흑인들을 소재로 그렸다. 그가 의도한 것은 빈한하지만 여전히 인간적인 존엄을 지키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는 인생 후반의 상당한 부분을 파리에 머물면서 적극적으로 미술활동을 했다. 1897년 이집트, 팔레스타인, 이탈리아 등을 광범위하게 여행하면서 작업 생활에 큰 전기를 맞은 것 같다. 그때부터 종교적 장면들이 그의 작업의 초점이 되고 그 이후에 기독교 신앙과 성경에 기초를 둔 작품들을 주로 제작하였다. 

 이 그림 앞에 서면 우리의 눈길을 힘껏 붙드는 것은 좌측 하단에서부터 화면 위로 퍼져 나가는 강렬한 백색의 빛, 달빛이다. 그 시발점에 노란 테두리 빛을 지닌 달이 일렁거리고 있다. 그리고 눈의 동선은 자연스럽게 화면 중앙 상단을 가로지르며 떠있는 배를 향한다. 타너의 소재 해석은 어쩌면 그리스도 보다는 무엇을 모르고 덤벙기가 일쑤인 제자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첫눈에는 찾기 어려웠던 그리스도의 모습은 상단 좌측 코너에 거의 완전한 추상 형식으로 다루어져 있다. 어떤 인물이라기보다는 긴 타원형의 빛이라고 봄직하다. 타너의 배려는 세심하다. 뱃머리의 방향이 주 그리스도를 향해있고 그것은 마치 우리 인생의 나그네 같은 항해가 그를 목표로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 밤 폭풍의 어두운 물결이 잔잔해지고 거기 물위에 예수님이 나타났다면 얼마나 당혹스럽고 놀랐을까. 등에 식은땀이 났으리라. 배에 탄 제자들이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은 이 엄위하고 절박한 순간에서였다. 뒤이어 다시 베드로가 “주님은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 16:16)라고 실토한 것 또한 같은 맥락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아야겠다. 이석우(경희대 명예교수, 역사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