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대회개부흥성회 새로운 부흥 물결 기대
1907년 1월 2일 평양에는 살을 에는듯한 매서운 겨울 바람이 몰아쳤다. 하얀 바지저고리에 짚신을 신은 사람들이 영하 20도가 넘는 추위를 가르며 예배당 안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도(都)사경회(부흥회)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사람들이 1500명이나 됐다.
사경회는 한국에 파송된 미국 남북, 캐나다, 호주장로교 등 4개의 장로교 선교사들이 한국기독인들과 연합으로 2∼15일까지 열렸다.사경회는 아침기도, 성경공부, 정오기도회 등으로 이어졌고 6일부터는 저녁집회가 시작되었다.
평양대부흥운동은 사경회 중 마지막날인 14일과 15일 이틀 동안에 이루어졌다. 14일 월요일 낮까지는 커다란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길선주 장로와 선교사들은 사경회가 이렇게 끝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정오기도회에 모여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다. 그날 저녁 설교를 맡은 리 선교사가 회중을 향해 통성으로 기도할 것을 요청하자 기도의 물결이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블레어 선교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기도소리가 마치 물줄기가 쏟아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보좌를 두드리는 것처럼 들렸다. 그날밤 평양에는 성령님이 성도들의 참회하는 울음소리와 함께 우리에게 오셨다. 기도가 계속되고 죄에 대한 슬픔과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가 한쪽에서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기도회가 끝나고 길선주 장로가 자신이 지은 죄를 공중 앞에서 고백했다. 길 장로의 회개로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지은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사이가 나빴던 장대현교회 지도자급 인물 김씨와 강씨는 이날 회개하고 극적인 화해를 했다. 게일 선교사가 쓴 ‘과도기 속의 한국’에는 그 순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갑자기 길선주 장로가 일어나 자신은 형제들을 질시했을 뿐만 아니라 블레어 선교사를 극도로 미워했다며 보기에도 비참할 정도로 땅바닥에 구르며 회개했다… 한 교인이 일어나 자신의 죄를 자복하기 시작했다. 그는 음란과 증오, 특히 자기 아내를 사랑하지 못한 죄를 회개했다.그는 기도하면서 스스로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울었고, 온 회중도 따라 울었다. 우리는 그 순간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있음을 분명하게 느꼈다”
집회가 끝나고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을 다 돌려보내고도 600명이 남아 새벽까지 간절히 기도했다. 사도행전 이후 가장 강력한 성령의 역사로 평가받는 평양대부흥운동은 바로 그 때 모인 남은 자 600명 가운데 임했다. 회개를 동반한 강력한 성령의 역사는 모인 이들 모두가 처음 체험하는 강력한 부흥이었다.
장대현교회에 놀라운 성령의 역사는 화요일 집회를 끝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부흥운동의 불길은 순식간에 평양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 부흥의 불길은 교파를 초월하여 평양시내 교회들로 확산되었고, 평양시내 거의 모든 미션스쿨들도 놀라운 회개를 동반한 부흥을 경험했다. 특히 숭실대학과 평양장로회신학교 개강 사경회 때 강력한 성령의 임재가 현시되었다. 이것은 장차 한국교회를 이끌어갈 젊은이들과 목회자들을 영적으로 무장하고 새로 조직될 한국교회의 축복이었다.
이것이 100년 전 평양대부흥운동이다. 기록에 남아있는 내용들과 역사적인 배경 그 이상의 무엇이 있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100년 전과 동일한 성령의 역사가 오는 6∼8일 대성전에서 열릴 대회개부흥성회에서 새로운 부흥의 물결로 일어나길 기대한다.
사진설명:1907년 1월 2일부터 15일까지 겨울 남자 사경회가 열린 평양 장대현 교회. 평양 장대현 교회로 인해 15년 동안 39개의 교회가 생겨났다. <자료출처=한국교회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