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물질적 방종 … 자살률 1위로 이어져
시간의 주인 하나님 좇아 매일에 충실해야
집 마당에 아름다운 나무와 화초를 심었을 때 보기에 아름다울지라도 그 나무나 화초를 무작정 자라게 내버려둔다면 나무와 화초는 점점 보기 흉한 모습으로 변해가게 된다. 적당하게 가지를 잘라주고 일정한 모양으로 다듬어 줄 때 보기에도 좋고 나무나 화초에도 좋다.
우리 인생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행복한 삶을 살려면 절제가 필요하다. 절제는 무엇을 하든 알맞게 조절하는 것으로 감성적인 욕구를 이성으로 제어하는 것이다.
절제가 필요한 부분은 삶의 전반과 관련이 있다. 어느 한 부분 소홀하다면 기형적 삶이 될 수밖에 없다. 먼저 우리는 성적(性的)인 절제를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부부와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만드시고 성을 부부라는 틀 속에 가두신 것은 인간이 절제할 때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성적으로 절제하지 못하고 육신의 욕구대로 성적인 방종을 하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착각 속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세계에서 성적으로 가장 자유분방한 나라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있는 나라들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나라들의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을뿐더러 그 나라 사람들이 성적인 기쁨을 가장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다음으로 우리는 물질적인 절제를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OECD 가입국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예전보다 지금 훨씬 잘 살고 있는데 자살률이 높아 가는 것은 분명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그럴까? 이 질문의 해답 역시 절제에 있다. 물질이 많으면 편하지만 물질이 많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다. 역으로 생각해 물질이 적으면 불편하겠지만 물질이 적다고 반드시 불행한 것도 아니다. 물질은 삶의 행복과 불행의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 비록 물질이 조금 부족하다고 해도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가치관 정립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또한 자기가 가진 물질 이상으로 큰 소비를 하지 않는 절제도 필요하다. 순간의 만족도 좋겠지만, 그 대가로 돌아오는 카드 빚, 은행 빚, 사채 등은 인생을 불행과 파멸로 몰고 간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물질적인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까지 있으니 절제의 미학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물질적인 사고와 사용에 있어 절제가 필요하다. 이 물건을 지금 당장 사지 않으면 못살 것 같고 남에게 뒤쳐질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 물건이 당장 없다고 할지라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가정과 직장에서 작은 행복들을 찾고 마음의 부자가 된다면 거기에서 오는 행복은 물질적인 면에서 오는 것이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사용에 있어서도 절제를 해야 한다. 인간의 일생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하나의 원자재이다. 어른들이 흔히 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인생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잠깐 졸다보면 40세 이고, 또 조금 졸다보면 60세라고 한다. 과장된 듯 들리지만, 기자 역시 나이가 들수록 이 말이 실감난다. 정말 살같이 빠른 광음이다. 세월은 한번 지나가면 되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주어진 하루를 잘 살아야 한다. 잘못하면 보람있는 일을 하나도 못하고 인생의 종착역에 이를 수도 있다. 후회는 항상 나중에 찾아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