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땅에 떨어진 씨와 같은 사람…” (마13:23)
밀레의 작품에 감동, 수십차례 모사  
고흐 특유의 강렬한 색이 화면 가득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면 탄성을 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말씀은 어느 시대나 어느 장소를 가릴 것 없이 진리이니 말이다. 그는 직심으로 가르치며 몇 번씩 반복해서 그것도 비유와 사례를 들어 간절히 설명한다.

 예수님의 말씀 설교는 짧고 분명하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는 마태복음 13장의 서두에 나오지만, 이 부분은 비유의 장이라 할 만큼 8번의 비유 가르침이 있다. 유명한 밀과 가라지, 누룩의 하늘나라 비유, 보화, 진주, 그물 비유 등이 그들이다. 

 예수님의 씨뿌리는 비유의 말씀은 이렇다. 농부가 씨를 뿌리러 나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졌다. 그러자 새들이 날아와 씨를 모두 먹어 버렸다. 어떤 씨는 흙이 별로 없고, 돌이 많은 곳에 떨어졌다. 곧 싹이 났지만, 흙이 깊지 않아서 해가 뜨자 시들어 버렸고, 뿌리가 없어서 곧 말라 버렸다. 어떤 씨는 가시덤불에 떨어졌다. 가시덤불이 자라서 그 씨를 자라지 못하게 하였다. 어떤 씨는 좋은 땅에 떨어졌다.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또 어떤 것은 삼십 배의 열매를 맺었다.(마 13:3-8)

 그 자리에 있어 직접 들은 제자들조차도 아직 알아듣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우둔한 나도 이 비유를 읽으면 늘 어떤 장소를 떠올리곤 했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을 다시 들으면 그것은 마음밭, 즉 어떤 정신성을 말하고 있음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제자들의 요청을 받고 예수는 다시 이들에 대해 소상히 설명한다. 씨가 떨어진 것은 네 곳이다. 길에 뿌려진 씨앗이란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한 터에 악한자가 와서 마음속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가버린 경우를 말한다. 돌무더기에 뿌려진 씨란 말씀을 들을 때 기쁘게 얼른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 오래 가지 못한다.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와 같은 사람은 세상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말씀을 가로막아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하고 만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와 같은 사람은 말씀을 듣고 깨달아 열매를 많이 맺는 사람이다. (마 13:18-23)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우둔한 나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에 다 해당된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씨를 다시 뿌리고 뿌리고 해서 오늘 이 만큼이나 여기 이렇게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때문인지 한번 씨앗이 마음밭에 떨어지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것은 끝내 생명으로 피어나리라는 외람된 생각을 해본다. 

 고흐에게 성경은 그의 삶의 출발점이었고 그리스도 자체였다. ‘석양의 씨뿌리는 농부’를 그린 고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많은 책을 읽은 독서광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조지 엘리어트의 소설 ‘목사 생활의 정경’(1858)에 특히 감명 받았었다. 소설의 주인공 타일론(Tylon) 목사는 검소한 생활을 하며 가난한 이들을 돌보다 병이 들게 된다. 그때 알코올 중독을 신앙으로 이겨낸 여인의 간호를 받으며 34세에 세상을 떠난다는 줄거리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과 같은 목회자가 되겠다고 결심할 정도였다. 

 고흐의 작품과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역시 밀레(Millet, 1814-1875)였다. 그를 존경하여 ‘아버지 밀레’라고까지 불렀으며, 그를 스승이자 그의 작품은 심장 자체라고 찬양하였다. 상시에(Sensier)가 쓴 전기 ‘밀레의 생애와 작품’에 큰 감동을 받은 그는 화가 생활을 시작한 초기부터 그의 작품을 반복해서 모사하였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석양의 씨뿌리는 농부’도 평생동안 그를 사로잡아 같은 주제의 그림을 수십 차례나 그렸다. 그는 데오에게 써보낸 편지에서 밀레의 ‘씨뿌리는 사람’ 작품은 들판의 씨뿌리는 농부를 넘어 영혼을 느끼게 한다고 쓸 정도였다. 

 이 그림을 보면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이 태양이 석양에 크게 샛노랗게 떠있는 정경이다. 그리고 중앙을 가로질러 서 있는 우뚝한 나무와 그 밑에서 열심히 팔을 흔들며 씨를 뿌리고 있는 농부가 보인다. 무엇보다 고흐 특유의 일렁이는 듯한 강렬한 색이 온 화면을 움직이는 듯하다. 이 시기는 고갱의 추상화 이론의 영향을 받은 듯 화면 전체는 신비감이 흐른다. 그림은 깊고 은유적이며 힘차다. 본인은 고흐가 렘브란트처럼 성경적 소재를 직접 다루지는 않았지만 그의 그림 속에는 하나님의 신비의 질서와 언어가 뭉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그림 속의 씨뿌리는 농부는 왜 외로워 보일까. 무척 외로운 밤이면 고흐가 떠올려 지는 것은 나만의 감상은 아닐 터이다. 저 거친 들판은 하나님의 촉촉한 이슬비 은혜를 갈구하는 고흐의 마음밭 같다.

이석우(경희대명예 교수. 역사문화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