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막 4:8)
낭만주의 미술의 선두주자, 색 통일성 유념
거친 폭풍과 평화로운 예수님 모습 대조적
                                           
 폭풍을 잠잠하게 하는 일은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 가르침과 병자를 활발히 고쳐나가는 그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그런데 이 일이 있기 전에 그가 집중적으로 행하신 일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과 병자들을 고치는 일이었다.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왜 이토록 많은 병자를 치료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적어도 2∼3번이면 예수님의 초능력과 권위는 증명되지 않았을까 하는 외람된 생각까지 든다. 기적을 보고도 그 반응은 꼭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그래서인지 양용의 교수는 그의 책 ?마태복음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 예수는 믿음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수단으로 기적을 행한 것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기적이 불신앙을 없이 할 수는 없었다고까지 말한다. 솔직히 베드로조차도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중  제자들은 한시도 깨어있을 수 없었다. 도마는 예수님의 가슴 상처를 확인하고야 믿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그가 이렇게 소외된 자 민초들의 절박한 고통에 함께 한 것은 그들의 병과 아픔에 함께 하여 이를 나누어 갖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이렇게 치유의 사역을 하는 그에게도 세상에서는 정처할 곳이 없었다. 산야의 여우도 그의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조차 거처할 곳이 있지만, 자신은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고 말하지 않았던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이 절대고독의 예수를 생각하면 우리는 얼마나 호사스러운가. 이런 와중에서 폭풍을 잠재우는 큰 사건이 일어난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셨습니다. ‘호수 건너편으로 가자’ 그래서 그들이 떠났습니다. 가는 동안 예수님은 잠이 드셨고 사나운 바람이 호수로 불어 닥쳤습니다. 배에 물이 가득차서 위험에 빠졌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선생님! 선생님! 우리가 죽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성난 파도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즉시 바람이 멈추고 호수가 다시 잔잔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의 맏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자  제자들은 두렵고 놀라서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길래 바람과 물에게 호령하시고 바람과 물이 이분에게 순종하는가?’라고 서로 말하였습니다”(눅 8:22-25)

 여기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예수님의 믿음에 대한 질책이다. 저자들의 기록에 뉘앙스의 차이가 있다. 마태복음에서는 믿음이 적음을 나무랐고(마8:26) 마가복음에서도 아직도 나를 믿지 못하느냐(막4:40)고 하였다. 그리고 누가목음에서는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눅8:25)라고 강하게 질타하셨다. 

 폭풍 앞의 제자들처럼 때로 불안이 깊이 엄습해 옴을 느낀다. 하지만 다른 인간에게 불안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우리들은 얼마나 오만해졌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자기성찰도, 반성도 미래 일에 대한 준비성도 없어지지 않았을까. 외람된 얘기지만 그 점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불안, 공포, 부끄러움, 이런 것들은 주어질만한 이유가 어쩔 수 없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들라크루와(E. Delacroix, 1798-1863)가 살았던 19세기 전반부는 예술과 과학의 위대한 만개기였다. 미술쪽에 클루베, 터너, 엥그르가 있고 시인과 문인으로 테니슨 키츠, 워드워즈, 빅토르 유고, 톨스토이 등이 떠올려지며 과학에서 다윈을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프랑스 혁명의 해(1789)에 태어난 들라크루와는 낭만주의 미술의 선두주자였다. 그가 지향하는 것은 작품 자체의 완벽성이지만 특히 일렁이는 듯한 색의 통일성에 유념하였다. 그는 루벤스 계열의 전통주의자에 속하면서도 자연에 기초한 인상파 발전의 길을 연 점에서 아방가르드로 인정받고 있다. 그림의 강한 주관성,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역동성에서 우리는 공교롭게도 초현실성과 동시에 음악을 또한 느끼게 된다. 그래서인지 그는 감성을 혁명적으로 그림에 도입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 음울하고 분노하는 듯한 폭풍 속의 일엽편주를 그리기 위해 그는 노르망디, 북해를 여러 번 답사했고 렘브란트, 루벤스, 틴토레토의 유사한 갈릴리 그림을 참조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진정한 자연의 아름다움은 작가의 상상 속에 있다고 믿었다. 그가 여기서 쓰는 어두운 회색, 짙은 녹색, 황색의 하늘은 어떤 죽음의 비애 같은 것을 예감케 하는 색이다. 음울하고 무너져 굴러 터질 것 같은 화면의 전체 분위기는 폭풍 속에 살아가는 풍전등화 같은 인간 운명과 불안을 예감케 한다. 이 그림을 보노라면 우리조차 출렁거리는 것같다. 그러나 잠든 예수님은 너무도 평화롭다. 들라크루와는 불안과 공포, 그에 대비되는 평화를 이 그림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이 아닐까.          

 이석우(경희대명예 교수. 역사문화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