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집, 교회시설물로 개조해 사용
이탈리아 아퀼레이아서도 기독교인 지은 최초 건물 발굴
콘스탄틴 이전의 교회 건물들이 발굴될 때마다 가정집(교회)에서 교회라는 공공건물로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하는 점과, 처음부터 교회로 사용할 목적으로 건축된 최초의 건물이 어떤 것이며, 무슨 양식으로 건축되었는가 하는 점에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시리아에서 발굴된 듀라-유로포스 교회가 가정교회로서는 콘스탄틴 황제 이전 시대에 속하는 것으로 확실하게 말할 수 있지만, 그밖에도 이스라엘의 가버나움에서 발견된 베드로교회와 로마에서 발견된 티툴루스 교회 등도 콘스탄틴 이전 시대라고 볼 수 있다.
가버나움에 기독교 유적이 있다는 것은 20세기 초반부터 알려져 있었다. 세밀한 발굴 조사를 통하여 1세기의 여러 가옥들 중에 색다르게 꾸민 방을 가진 가옥을 발견하게 되었다. 베드로의 집으로 여겨지는 그 방은 석회가 칠해졌고, 보통 방보다 컸으며, 종교적인 그림과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4세기경에 그 방 주위에 로마시대의 상가와 주거 겸용의 아파트가 지어졌지만, 5세기가 되기까지 그 방은 순례자들에 의해 거룩한 장소로 공경되었다. 그러다가 5세기 중반에 그 위에 다섯 면에 현관을 가진 8각형의 교회가 건축되었다. 그 방에 새겨진 여러 순례자들이 남긴 글자와 그림들을 조사해보면 그 시기는 콘스탄틴 이후의 것들로 보인다. 좀 이른 시기의 것들도 있겠지만 전반적인 시기를 뒤바꾸지는 못한다. 베드로의 집이 콘스탄틴 이전의 가정교회라고 할지라도 어떤 유물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에 교회 건물에 관해 어떤 사실을 참고할만한 것이 없다. 다만 가정교회가 교회의 시설물로 개조되어 사용되었다는 유일한 사례를 보여준다.
이탈리아의 아퀼레이아에서 콘스탄틴 이전의 교회건축에 대한 중요한 지식을 알려주는 유적이 발견되었다. 1893년에 아퀼레이아 성당의 북쪽을 발굴하기 시작했으며, 1909년에 바닥면에서 모자이크가 발견되었으며, 완전히 발굴한 결과 나란히 세워진 두 개의 교회가 드러났다. 남쪽편 교회는 37.4×20.4m의 크기이며, 북쪽편 교회는 37.4×17.25m의 크기로 모두 2백평 정도였다. 두 교회 모두 가운데 본당을 중심으로 3개의 복도가 있었으며, 반원형으로 내민 시설(앱시스)은 없었다. 두 교회 사이에는 직사각형의 방이 있어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남쪽 교회에서 비문이 발견되었는데, 거기에 데오도로 주교에게 교회를 헌정한다고 쓰여 있었다. 1957년에 발간된 최종 발굴 보고서에 의하면 북쪽 건물의 동쪽 끝 부분에서 예배당으로 여겨지는 작은 방이 발견되었다. 그 방은 북쪽과 남쪽 교회보다 이전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만일 그것이 확실하다면 콘스탄틴 이전 시대에 속하는 최초의 기독교인에 의해 건축된 예배당이 된다. 그러나 작은 예배당이 최초의 기독교인에 의해 건립된 건물인지에 대해서는 의심스러운 점이 남아 있다. 데오도로에게 헌정된 남쪽과 북쪽 교회는 313년(또는 319년)에서 400년 사이에 속하는 건물로서 연대상으로는 오늘날까지 존재하는 기독교인이 지은 최초의 건물이다. 두 교회에는 모자이크 바닥을 한 방들이 있었으며, 남쪽 방에는 요나와 선한 목자를 묘사한 모자이크가 있어서 예비 신자의 침례와 교육에 사용되던 방으로 여겨진다.
로마에는 중세 때 교회 형태인 바실리카(basilica) 양식으로 발전된 교회 건물들이 많이 있었다. 바실리카는 직사각형의 긴 건물로 중앙에 본당을 두고, 양옆에 복도를 가진 구조이다. 로마의 바실리카 건물은 본래 상업과 법률 업무를 다루는 공공건물이었다. 티툴루스(titulus)는 바실리카 교회양식으로 발전하게 된 교회건물을 가리킨다. 티툴루스라고 불리는 이들 교회는 오늘날 추기경을 모시고 있는 영예스러운 교회가 되었으며, 그 교회 이름도 교회와 처음 연관된 수호성인의 이름을 따라서 불린다. 예를 들면 성 클레멘트와 연관된 교회는 ‘티툴루스 클레멘트’라고 불리는 것이다. 초기 문헌에 기록된 25개의 교회의 대부분이 그런 방식으로 이름이 붙여졌으며, 그러한 교회들은 거의 다 콘스탄틴 이전의 건물과 연관되어 발전한 것이다. 그래서 이전의 학자들은 그같은 교회들이 가정교회에서 발전된 것으로 여겼지만, 문서 기록에는 그러한 추정을 뒷받침해주는 것을 찾을 수 없다.
한상인 목사(성동성전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