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사람들이 직업을 통해 생을 꾸려가듯 동물이나 식물도 가만히 살펴보면 나름대로 기발한 삶의 방식들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보호색을 가진 벌레들이 이외로 많다.
하루는 채마밭 상추 잎에 물방울 크기의 구멍이 생겼다. 무심히 보아 넘겼는데 구멍 난 상추 잎이 점점 많아지는 게 아닌가. 아예 잎사귀가 통째로 갉아 먹힌 것도 있었다.
벌레가 생긴 것이다. 고약한 벌레들이 애써 가꾸어 놓은 남의 상추밭을 점령하다니. 그러나 잎을 찬찬히 살펴보아도 흔적은 있는데 범인의 윤곽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벌레가 상추 잎과 같은 보호색을 입었으니 찾아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한참만에야 겨우 상추잎 가장자리에 붙어있는 벌레를 찾아냈다. 역시 상추잎과 똑 같은 초록색이다.
2센티미터는 될 벌레가 그토록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은 그의 위장술이 천부적이기 때문이다. 벌레 스스로 위장술을 터득한 것은 결코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특별한 능력일 뿐이다. 대개의 생물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무기나 재주를 한가지씩은 가지고 있다. 개체가 살아남기 위해 노력해서 얻은 것도 아니고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은 신비한 능력인 것이다.
벌레를 잡아놓고, 지으신 모든 만물을 섬세하게 돌보시는 전능자의 마음을 잠시 생각했다. 그러나 어쩌랴. 약 한번 치지 않고 고이 길러온 내 상추밭을 벌레에게 먹힐 수는 없는 노릇. 한참을 걸려서야 겨우 벌레를 세 마리 잡아냈다. 수고도 아니 하고 남의 것을 몰래 훔쳐 먹는 나쁜 벌레를 神은 왜 지으셨을까? 사람을 해롭게 하는 파리,모기나 징그러운 뱀은 또 왜 지으셨을까?
내가 얻은 해답은, 세상 모든 만물은 창조의 질서에 따라 계획된 것이며 각각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생각을 초월한 신의 섭리이며 자연을 이루는 근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