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20년 하나님이 인도하셨어요”
사춘기 ‘왜 사는가’ 물음, 삶의 터닝포인트 돼
주님 영접하는 환자 볼 때 가장 큰 보람 느껴
하루평균 암으로 인한 사망자 수 179명. 18일 통계청이 내놓은 ‘2005년 사망원인 통계결과’에 따르면 이는 10년 전보다 20% 이상 증가한 수치다. 의료기술 발달로 인구 10만 명당 사망자 수가 10년 전에 비해 4.2% 줄었다지만 암으로 인한 사망률은 1995년 110.8명에서 지난해 134.5명으로 23.7명(21.4%)으로 늘었다. 웰빙(well being)을 ‘시대적 사명’으로 부르짖은 ‘시대의 역설’일까. 안타까운 수치가 또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인구 10만 명당 자살율은 26.1명으로 10년 전(11.8명)의 2.2배로 늘었다. 하루 평균 33명, 약 44분에 1명 꼴로 목숨을 끊은 셈이다. 이는 2003년부터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3년 연속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더 나은 삶을 위한 발버둥에도 불구하고 눈에 드러나는 수치는 분명 우리의 ‘한계상황’을 확인케 하고 있다.

웰빙도 중요하지만 웰다잉(well dying)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생각에서 최화숙 교수를 만났다. 그이는 매일 아침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을 위로하러 집을 나선다. 20년을 한결같이 해온 일이다. 물론 지금은 그가 이끌고 있는 이화여대 가정호스피스센터의 행정과 강의 등으로 전적으로 이 일에 매달리지 못하지만 지금도 죽음을 눈앞에 둔 환자들의 마음을 활짝 열기 위해, 외롭게 죽음과 싸우는 그들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20년을 해온 일이지만 죽음을 맞는 환자들을 보면 힘이 들어요. 물론 손에 닿는 일이야 익숙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이 같을 수 없잖아요. 죽음에 임박해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삶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을 볼 때면 안타까움 때문에 나중엔 손가락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예요”

이화여대 간호학과를 졸업한 최 교수가 호스피스의 길로 들어선 것은 1987년부터였다.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 호스피스과에서 자원봉사자로 호스피스 관련 외국서적을 번역하는 일을 하면서 처음 이 분야를 접했다. 1988년 3월 미국 선교사로 연세대 간호대 교수였던 메리언 킹슬리가 국내에 처음 설립한 가정호스피스인 세브란스 호스피스에서 말기암 환자를 돌보기 시작했다. 간호사 가운데 호스피스를 전문으로 시작한 것은 국내에서 최 교수가 사실상 처음이다. 호스피스 활동을 계속하다 1992년 5월 이화여대 가정호스피스센터가 생기면서 창설멤버로 참여했고 현재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2002년에는 호스피스경험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죽음을 위한 안내서’라는 책도 썼다.

어떻게 시작된 일인지 궁금해 사연을 물었다. “처음부터 이 일을 하려 했던 건 아니에요. 내 장래에 대한 욕심이 누구보다 많았던 사람이었거든요. 하지만 하나님은 자연스럽게 이 길로 올 수밖에 없도록 하셨어요” 그가 들려준 사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중학교 1학년 어느 날 던진 선생님이 던진 한 마디는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선생님은 “왜 사는가” “왜 공부를 하는가” 물으셨다. 그리곤 “답은 스스로 찾아 보라”고 하셨다. 해답을 찾기 위해 도서실을 이 잡듯 뒤져가며 책을 읽었다. 선생님을 찾아 답을 구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렇게 하다보니 오기가 생겼다. 그렇게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찾았다. 하지만 그 어떤 해답도 얻을 수 없었다. “아마 그때 성경이 도서실에 있었다면 그렇게 오래 방황하진 않았을 거예요. 대학에 와서 하나님을 영접하고 나서야 인생의 목표를 깨달았어요. 그리고 결심한 것은 내 삶이지만 결코 내 맘대로 살지 않겠다는 거였어요” 그리곤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졸업 전 그는 3년간 무의촌 진료에 나서 ‘사랑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는 시기였다. 그때 삶의 목표를 확고하게 정했다. 종합병원에서 인정을 받으며 일했던 그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호스피스로서의 길을 걷게된 것은 그를 지도한 김수지 교수(현 서울사이버대 총장)의 부탁 때문이었다. 국내 호스피스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김 교수는 “이화여대에 가정호스피스를 만들 것”이라며 최 교수를 찾아왔다．“기도로 준비를 했어요. 선뜻 하겠다고 나선 것은 교수님 부탁도 있었지만 1987년 하반기부터 6개월 가량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며 깨달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간호사로 일했던 전력도 환자들을 위해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죠”

최 교수는 그 동안 호스피스로 활동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보았다. 그 수가 얼마나 될까 궁금해 물었다. “기록을 정리한다는 차원에서 900여 명까지는 그 수를 세어보았어요. 그런데 문득 드는 생각이 ‘이렇게 높아 가는 기록이 스스로를 높이는 도구일 수 있다’는 거였죠. 그 뒤로는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세지 않고 있어요” 그의 손을 거쳐간 환자들은 대부분 의학적으로 생명이 6개월도 남지 않았다고 판정 받은 사람들이었다. 백혈병을 앓고있는 어린아이에서부터 80이 넘은 암 환자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

호스피스로서의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환자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기도를 하고 마음을 다잡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사람들을 대하고 나오면 하루종일 우울할 때도 많았다. 특히 전혀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환자를 대하고 그 집을 나서면 몸에서 수분이 모두 빠져나가는 듯한 허탈감에 빠질 때도 있다.

“힘들지만 힘든 만큼 보람되고 힘이 나는 일도 많죠. 하나님을 의지하고 진정으로 주님을 영접한 후 가장 편안한 모습으로 떠나는 모습을 대하면 정말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환자가 세상을 뜨고 유족들로부터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연락이라도 받으면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라고 했다. 목회를 하는 남편과 두 아들의 어머니이기도한 최 교수는 아들들이 자신이 하는 호스피스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얼마 남지 않은 자신을 돌아보고 이웃과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돕는 것은 호스피스만이 지닌 특권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어찌 보면 지독히 괴로운 일을 하는 그이였지만, 얼굴이 환한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와 인터뷰를 마치며 돌아오는 차안, 머릿속에는 그의 사무실 벽면에 붙어있던 말이 맴돌았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 하루는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하루이다’(소포클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