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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타난 아버지상(像)

자녀 향한 짝사랑으로 애태우는 하나님

자신의 죽음으로 위대한 사랑 구현

아들아, '내가 너를 잘 아노라'

고대 이스라엘의 사회구조는 마을이나 지역보다 종족과 씨족중심이다. 개인의 혈통이나 계보가 중요했기에 아버지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자녀들은 다 아버지를 공경해야 하고(말 1:6), 아버지는 마치 흙을 빚는 도공처럼 식구들을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었다(사 64:7). 또 피를 나누지 않았어도 공동체 안에서 권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버지라고 불렀다. 나아만 장군은 그의 종으로부터(왕하 5:13). 제사장들은 속해있던 제의 공동체로부터(삿 18:19). 엘리야는 그의 제자들로부터 아버지라고 불렸다(왕하 2:12).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사람은 가장 비참한 운명이며(시 27:10), 자신을 구원해줄 아버지가 없는 사람은 큰 슬픔의 원인이 되었다(애 5:3).

아버지는 딸도 노예로 팔 수 있지만(출 21:7), 자녀를 잘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다. 자녀를 훈계하고 징계하며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큰 치욕거리가 된다(잠 19:26). 욥기 5장 4절에서는 어리석은 아버지를 둔 자녀들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말하므로 아버지의 권위가 강한 만큼 그에 따르는 책임도 큼을 말해준다. 아버지는 마땅히 자녀들의 피난처가 되어야 한다(잠 14:26).

성경은 또 다른 아버지를 소개한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이다. 그 아버지는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롭고, 오래 참으실 뿐 아니라 우리를 바로 교훈하고 바르게 이끄신다(출 4:22; 신 1:31). 하나님은 애굽의 바로 앞에서 이스라엘을 자신의 장자라고 부르셨고(출4:22),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아 포로로 끌려가고 땅을 잃어버린 절망에서도 여전히 아버지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고(임신했고), 만드셨다(신 32:6). 지었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임신했다'는 뜻도 있다. 출애굽 때 마치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이스라엘을 품으셨다고 했다(민 11:12).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애로운 손길로 돌보아 주시는 어머니 같으심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식 삼고, 기름진 땅을 주고, 아버지라고 불리고 싶었지만(렘3:19), 그들은 나무를 아버지라고, 돌을 향해 어머니라고 했다. 사랑하는 아들이라 여겨 고통에서 건지시고(호 11:1), 자식을 양육하듯 길렀지만(사 1:2) 아버지를 거역하고 말았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었음에도 바알만을 따라가는 그들에게(호 2:8),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에라스티크 리”(그대를 나의 아내로 삼고 싶습니다)라고 세 번에 걸쳐서 청혼을 한다(호 2:19-20).

하나님은 왜 이토록 이스라엘을 사랑하실까?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 무엇이 하나님 속에 있다(호 11:8). 왜 하나님은 육신이 되어 십자가에 죽으셨을까? 구약의 곳곳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피눈물 나는 하나님의 절규가 나타난다. 그러나 그 모든 사랑은 실패로 돌아갔다. 하나님은 자신의 죽음으로 우리를 구원하기로 작정 것이다. 빌립은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했지만, 예수를 본 자는 아버지를 이미 보았다(요 14:8). 아들을 알면 아버지를 알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다시 한 번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한 사랑을 십자가에서 보여주셨다.

정유환 전도사(국제신학연구원 교육연구소)

 

기사입력 : 2006.09.15. pm 16:43 (편집)
박재형기자 (kevin@fg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