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 실천하며 새로운 인생 눈떠
하나님과 이웃의 기쁨 되고 싶어

‘피아노 치는 변호사’로 많이 알려진 박지영 집사를 만났다. ‘피아노를 칠 줄 아는 변호사가 한둘이겠냐’ 할 수 있겠지만, 취미생활로 치는 정도라면 이런 닉네임은 필요 없을 게다. 소위 엘리트 음악인이 거쳐야 할 코스로 꼽히는 예원, 서울예고, 서울음대 출신인 그가 피아니스트의 길을 접고 법조인의 길에 들어서게 된 조금은 아프고 쓰린 사연에 대해 들어보았다.

다섯 살 때 처음 피아노와 인연을 맺은 박지영 집사는 최고의 피아니스트를 꿈꾸며 삶의 모든 것을 피아노에 걸었다. 집안 형편이 극도로 어려워졌을 때에도 굴하지 않고 마주한 피아노는 서울예고를 졸업하기까지 15년 동안 그이의 삶에 가장 중요한 파트너였다.

그런 그에게 뜻하지 않은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서울음대 피아노과 입시에서 떨어진 후였다. 마음을 다잡고 입시준비를 해야하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몸 안에 작은 풍선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풍선은 그이의 마음을 눌러 숨쉬기를 힘들게 했지만 마음이 아파 몸이 아픈 것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1989년 5월11일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병원을 찾았다. 이어 ‘응급A’라고 표시된 진단서를 들고 다시 큰 병원으로 향했다. 2주간의 검사 끝에 그를 괴롭히던 그 풍선의 정체를 파악했다. 풍선은 림프샘에 생긴 종양이라고 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마 앞에서 모든 희망은 무너져 내렸다. 병원에서는 50%의 완치율을 말했고, 그것도 양호한 상태라고 했다. 그렇게 항암치료가 시작됐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항암주사를 맞기 시작되며 몸 속 장기가 온통 입으로 딸려 나올 것 같은 토악질을 10시간씩 해댔다. 목으로 물을 넘기기도 어려웠고, 눈을 떠도 아프고 감아도 아팠다. 밤새도록 병원 벽에 무릎을 찧어대면서 다리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는 고통이 계속됐다. 그때마다 지치고 거추장스러운 몸을 내려놓고 영원히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그렇게 아무런 예고 없이 눈앞에 나타나 빨려 들어간 절망의 터널은 생각보다 깊고 어두웠다. 고통이 너무 심해 하나님 앞에서 미동도 하지 못했다. ‘왜 내게 이런 일이?’라는 질문조차 던지지 못했다. 막연하게나마 드릴 수 있는 기도는 “내일은 오늘보다 덜 아프게 해주세요”라는 짤막한 말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이런 삶을 계속 사는 것은 안되겠다 싶었다. 그는 ‘고난의 터널 한복판에서 인생이 종지부를 찍는다’고 해도 ‘선택해서 해야할 일은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곧 항암치료를 중단했다. 병원에서는 ‘더 악화된 후 찾아오면 그 때는 늦는다’고 경고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집에서 현미와 채소 등 자연식을 먹으며 1년 여 동안 암세포와 싸워나갔다. 바닥을 쳤던 몸의 상태가 조금씩 나아져 현재 그는 하루가 48시간이라도 모자라는 변호사로 새 삶을 살고 있다.

계속된 투병생활과 치료 후유증으로 더 이상 피아노를 연주할 수 없게 되었고 차선으로 작곡공부를 시작했지만 피아노가 아닌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학생활 첫 해 여름인 1991년. 출석하던 교회에서 조병호 목사(한시미션대표)를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음대 재학 4년 동안 한시미션에서 활동하며 농촌오지, 도시빈민, 소년소녀 가장, 장애우 등을 향한 구체적인 섬김을 실천했다.

“이 세상은 천년 만년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잖아요. 우리 삶이 한정되어있는 삶이잖아요. ‘한시(限時)’라는 그 단어가 가슴깊이 새겨지면서 한정된 시간 동안 주님 보시기에 제대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때부터 박 변호사는 한시미션의 ‘골수간사(?)’가 되어 다양한 사역에 동참했다. 매년 여름과 겨울 오지를 돌며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교회가 없는 지역을 찾아가 섬김과 사랑으로 헌신하며 기쁨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피아노가 없는 삶에서 때로는 될 대로 되라며 삶을 방치했던 자신의 삶을 회개했다. 한정된 시간을 살며 하나님 앞에, 조금 더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들을 섬기고 이웃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때 그의 멘토인 조병호 목사가 사법시험을 권했다. 그렇게 사법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음대를 졸업하던 1995년 여름 신림동 산자락 여자고시원에 자리를 잡고 수험생활에 들어갔다. 20년 동안 음악만 한 그에게 사법시험 준비는 남들보다 곱절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열병과 불면의 숱한 시간들을 보내며 감사하게도 실력은 꾸준히 향상되고 있었다. 물론 공부만 잘돼 간다 싶으면 번번이 발목을 잡는 체력의 한계를 경험해야 했다. 또한 정보부재에 의한 과목 선택의 오류 등으로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맛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수험기간 중에도 빼놓지 않은 것이 선교와 봉사활동이었다. 공부가 급했지만 그는 선교와 봉사를 제대로 해보겠다는 목적을 갖고 시작한 공부였기에 ‘평생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고 본말이 전도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하나님 앞에 몇 번이고 다짐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시험에서 실패가 거듭됐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것 역시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 다른 사람을 위로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하늘과 땅이 달라붙는 것 같은 절망감 속에서도 “실력으로 따지자면 아직 합격에 미치지 못해도 시험에 붙어야 하는 이유로 따지면 나는 수석감”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마침내 2000년 제4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6년부터 준비했으니 5년만의 합격이었다.

현재 그는 법무법인 로고스의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지금의 모습은 분명 감사의 제목이지만 그것이 안주의 근거는 아니라고 했다. 언제라도 하나님이 ‘이제 이 정도면 됐다. 그 정도면 족하다’는 사인을 보내시면 모든 것을 깨끗이 내려놓는 사람이고 싶다고 했다. 한시적인 삶 속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가장 중요한 일,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단다.

“하나님은 부족한 제게 삶과 죽음, 음악과 법이라는 큰 틀을 경험하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것은 특권인 동시에 하나님과 이웃 앞에 다시 갚아야 할 사명입니다. 예기치 않은 고난 앞에서 삶의 의미를 몰라 방황하며 허망한 것을 찾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변론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크고 작은 고난 앞에 일희일비하며 흔들리지 말고 이 아름다운 세상에 이렇게 좋은 육신의 장막을 입고 짧든 길든 건강하든 약하든 살아가고 있다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 늘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길 소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