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아’를 ‘어’로 듣는 남자친구 어쩌죠?
A: 정서 자존감 모두 다르니 이상한게 아니에요
갈등은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내가 한 말을 상대방이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바람에 낭패를 당했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듯 싶다. 부부간, 이성친구간 문제도 실은 아주 사소한 말다툼에서 비롯된다. 세계적인 언어학자 데보라 태넌은 ‘남자를 토라지게 하는 말, 여자를 화나게 하는 말’(한언출판사)을 통해 남녀의 대화가 왜 그토록 어긋나기만 하는지 ‘그 안에 숨겨진 비밀’을 살짝 열어 보인다.
남자와 여자는 각기 다른 성(性) 방언을 쓰고 있다. 불행하게도 전혀 다른 언어코드를 사용하는 남자와 여자의 대화법을 치료할 묘약은 없다. 남자들은 대화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상하관계를 설정하고자 한다. 남자들이 끊임없이 허풍을 떨며 자신을 과시하는 이유다. 남자들은 누군가에게 길을 묻는 것을 죽을 정도로 싫어한다. 반면 여자들은 전혀 창피해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한다. 인간관계를 상하조직으로 보는 남자들 세계에서 길을 물음으로써 정보 부족을 노출시키는 것은 낮은 위치를 자청하는 일이다. 이런 남자들에게 ‘기계치’ 여성의 자동차나 컴퓨터 등을 고치는 기회를 잡는 것은 상대를 나보다 낮은 단계로 만들 수 있는 결정적 찬스다. 남자들은 의도적으로 알아듣기 어려운 단어를 골라 쓰거나 “이것도 몰라요?”라는 말을 주저없이 내뱉어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
반면 여자들은 대화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는 동급 관계라는 것을 확인받고자 하기 때문에 대화 중에 ‘나는 당신과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라는 신호를 계속 보낸다. 만약 여자 세계에서 서투르게 자신의 우월을 과시하다간 큰코다칠 수 있다. 여자들은 우월하다는 메시지보다 다르다는 신호를 더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그녀를 ‘왕따’시킨다. 따라서 여성들은 되도록 튀지 않으려고 자신을 숨긴다. 여자들이 종종 내숭을 떠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이제 남자와 여자는 전혀 다른 언어를 쓰고 있고, 서로 다르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남녀를 다르게 만드셨을까? 시시때때로 대화를 통하지 않게 해 싸우는 것을 즐기시려고?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아니다’. ‘다름’은 축복이자 은혜고 자연스러움이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손수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다.
결혼 전 남녀는 한 사람으로 완벽하다. 산술적으로 ‘1+1=2’를 유지하는 시기다. 아니 온전한 ‘1’이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시기다. 하지만 결혼은 산술적 관계를 뛰어넘는다. ‘1+1’은 결코 ‘2’가 되지 않고 ‘온전한 1’이 된다. 완벽하게 홀로 ‘1’이 된 것 같은 사람도 결혼하면 ‘2’가 되지 않는다. 불완전한 둘이 모여 하나가 되는 것이고 그때 된 ‘1’은 비로소 하나님이 원하시는 창조 원형의 모습을 구현하게 된다. ‘그걸 어떻게 장담하느냐’고 하겠지만, 성경은 이에 대해 분명하게 답을 내놓고 있다.
창세기 2장 18절에는 “야훼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물론 이 말을 잘못 해석하여 ‘여자를 단지 남자의 돕는 배필’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는 성경을 절반만 이해한 사람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돕는 배필’은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사이’를 말한다. 즉, 남편은 아내를 도와야 하고, 아내는 남편을 도와 ‘서로를 세워주는 관계’를 의미한다.
이런 관계에서 다름은 축복이다. 똑같은 모양, 똑같은 요구, 똑같은 상황 가운데서 돕는 배필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서로 다름을 유지한다면 상황은 다르다. 상대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외국어를 대하듯 서로의 언어를 배워야한다. 상대의 말을 ‘도대체 왜 저럴까?’가 아닌 ‘아’ 소리를 ‘아’ 소리로 알아듣고 받아들이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