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가정의 덕목 ‘긍휼이 여기는 마음’
배우자를 내 생명처럼 여겨야

 대부분의 전통적 가정에서는 남편과 아내의 역할이 뚜렷이 구분되어 있었다. 남편은 가정 경제의 책임자로서 밖에서 돈을 벌기 위해 애썼고, 아내는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는 것으로 그 역할이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가정에서는 많은 남편들이 아내와의 맞벌이를 원하고 있고, 또 아내 스스로도 일을 통한 자아 성취와 돈벌이를 위해 많은 시간을 가정 밖에서 보내고 있다. 이로써 남편도 가사노동과 육아를 담당하는 등 부부는 가정을 돌보는 일에 요구되는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배우고 익히고 훈련해야 하는 상황에 놓임으로써 배우자에게 보다 많은 요구를 하기에 이르렀다. 재테크와 가사와 육아 등 가정 안팎의 관리를 둘 다 감당해야함으로 서로에게 다양한 역할을 해내도록 요구하게 된 것이다.

 바깥일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아내가 부족한 에너지로 가정을 돌봐야 할 때, 가사에만 전념하던 때보다 더 많은 육체적, 정신적 부담을 가지게 된다. 이로써 지친 아내는 남편에게 요구가 늘어나고 그 요구에 남편이 기능적으로 대처하지 못할 때에 불만과 피해의식이 점점 커지면서 피곤을 핑계하여 남편의 성적 요구를 무시하는 등의 부부간의 위기가 조장되는 것이다. 남편 또한 가정으로 돌아오면 쉬고 싶은데 익숙하지 않은 또 다른 역할에 피곤한 자신을 내어줘야 하니 지치고 힘들기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결국 바깥일에 소모된 에너지가 클수록 가정을 돌보는 일은 부담이 될 수 밖에 없기에 부부가 서로를 먼저 배려하지 못하면 배우자에 대한 불만은 여러 형태로 쌓이게 된다. 부부는 서로에 대한 피해의식에 빠져 분노하고 다투고 침묵하며 아예 마음을 닫아 버리기도 한다. 상처가 쌓여서 급기야는 한계 상황에 이르러 부부 관계를 끝내버리거나 다 털어버리고픈 위기 상황으로 가게 되기도 한다.

 이는 남편과 아내의 개인적 잘못 만이 아닌 현사회의 상황과 시대정신 때문에 빚어지는 구조적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홀로 살면서 나 혼자만 담당하면 될 일을 너와 우리로 엮어져서 더 많은 힘과 에너지를 쏟아야 하고, 그런 과정에서 기쁨이나 보람, 의미를 찾을 수 없다면 왜 이렇게 한데 어울려 힘들게 살고 있는가하는 본질적 회의에 빠질 수 있다. 이런 마음이 해결되지 않을 때 끝내는 부부 해체, 가족 해체로까지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상황이 폭력이나 알코올 중독, 습관적 외도나 여타의 중독으로 인한 극단적 고통가운데 사는 가정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부부가 현대적 상황에서 빚어진 구조적 문제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함께 합의하고 의논하며 대처하지 않으면 신앙을 가진 평범한 가정조차도 시대상황에 떠밀려 어느새 그와 같은 해체의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직장에서 인정받고 많은 성취를 이뤄야 하는 직업적 요구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가정에서 조차 피곤한 삶을 계속 지탱해 내야 한다면 이는 영적 위기로까지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탓에 배우자의 특별한 부정이나 악함, 성격적 문제 때문에 이혼을 원하는 상담과 함께 너무 힘이 들고 지쳐서 가정이란 구조에서 홀로 이탈하고픈 욕구에서 빚어지는 상담도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시대 상황에서 현대 가정이 가장 회복해야 하는 덕목은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엡 4:32)’ 이라 생각된다. 여인이 자기 태에서 난 아이를 불쌍히 여기는 것과(사 49:15) 하나님이 인간의 체질을 아시기에 불쌍히 여기는 것과 같은 긍휼의 마음(시 103:13,14)이 우리 속에 회복되어야 한다. 이는 룻의 이야기에서 배우게 되는 마음이다. 늙고 가난한 몸으로 홀로 남겨질 처지에서도 며느리를 배려해 그녀의 장래를 위한 가능성을 선택하도록 자신을 떠나라고 권하는 시어머니 나오미나 오히려 그런 시어머니를 감당하고 돌보기 위해 끝까지 따르기로 작정하며 자신을 포기하고 희생하는 며느리 룻에게서 볼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이다. 그것은 수고에 대한 보상이 없을지라도 충성심을 가지고 상대를 돌보며 선대하는 마음이다.

 나오미와 룻은 자신의 입장이 최악일 때 오히려 상대에게 인애를 더함으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동일한 인애와 자비를 입는 보상을 받았다. 우리도 나오미와 룻처럼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를 헤아려주며 불쌍히 여기고 선대하기를 배워야 한다. 나를 사랑하사 아들을 내게 내어주신 하나님처럼, 나를 사랑하사 자신의 생명을 내게 내어주신 주님처럼, 배우자에게 나를 내어주기로 날마다 결단하자.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인애와 자비가 우리 가정에 머물게 하자.

(한사랑기독상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