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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이만재(카피라이터,‘막쪄낸 찐빵’저자)

 온 나라가 한바탕의 광풍(狂風)을 치렀다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직장에서도 월드컵, 가정에서도 월드컵, 학교에서도 월드컵, 거리에서도 월드컵, 운동장에서도 월드컵, 식당에서도 월드컵, 심지어는 병원이나 찜질방, 교도소에서도 월드컵이었다고 합니다. 온 나라가 월드컵의 붉은 물결이었고, 온 나라가 월드컵의 목 터지는 함성이었습니다.  

게다가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경기 시간이 하필이면 우리의 한밤 중이거나 새벽시간이어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들뜬 기분에 날밤을 꼬박 새야 했습니다.   

물론 축구라고 하는 건전한 공놀이 자체를 탓해서는 안되겠습니다만 세상 물정 돌아가는 구조가 공놀이 하나에 의해 좌지우지되어서는 곤란하리라는 걱정 하나는 있습니다. 월드컵 이벤트가 지구촌의 평화축제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우리의 경우, 그 열광의 정도가 좀 지나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이 함께 따르기 때문입니다. 손쉬운 비교로서 우리네 지상파 방송 3사의 월드컵 편성분량이 월드컵 당사 주최국인 독일보다 곱절이나 많았다고 하니 스스로 벌린 입을 얌전히 다물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국민이 그토록 간절히 열망하던 16강 진출에 실패하고 만 것이 우리가 당한 현실이었습니다. 동네 공터 족구 심판보다도 못한 심판진의 양심수준이 FIFA라고 하는 돈벌이 단체의 수준을 웅변하는 것은 혹 아닌가 하고 쓸개 씹은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참인데 때마침 축구 때문에 잠을 설쳐 졸린 눈을 비비던 집사람의 아프디아픈 말펀치 하나가 화살촉처럼 날아와 내 양심 가운데에 박혔습니다. 

 “난 진작부터 질 줄 알았다구요. 예배시간에도 내내 축구생각만 하고, 축구 본다고 새벽기도 빼먹을 때부터 알아 봤다니까요”
 아프긴 하지만 마눌님 말씀이 맞습니다. 우리가 월드컵 광풍에 홀려있는 동안 잠시 전지전능하신 분의 절대권세를 깜박 잊고 있었던 거지요. 그렇습니다. 16강 진입 실패라는 회초리를 통해 우리에게 냉정을 되찾으라고 명령하시는 주님의 깊은 뜻을 다시금 헤아리기 위해 우선 꿇어 엎드려야겠습니다.

 

기사입력 : 2006.07.16. am 09:29 (편집)
이미나기자 (mnlee@fg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