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작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던가? 우리 집 작은 채마밭의 식물들은 내 목소리를 들으며 자란다. 아침마다 밭에 나가 식물들과 대화를 하는 것이 버릇이 된 것이다. 물을 주면서 풀을 뽑아주면서 “벌써 이렇게 자랐니? 정말 예쁘구나”하고 종알거리면 식물들도 초록빛 목소리로 노래하듯 속삭인다. 

 “ 당신이 사랑한 만큼 우리들도 예뻐진답니다”

 어느새 두어 번이나 잎을 따 낸 상추와 갓, 치커리가 스무 포기 정도 있고 방울토마토 모종 두 포기가 앙증맞은 열매들을 달고 있다. 고추 모종  십여 포기와 들깨 몇 포기 뒤쪽으로 막 넝쿨을 뻗는 호박이 있고 한쪽 모서리엔 분꽃 세포기가 반 뼘 키 높이로 자랐다. 겨우 반 평 정도의 밭에 초록의 식물들이 빼곡하다. 담벼락 아래 돌투성이 땅을 손질해 만든 이 작은 채마밭의 가장자리엔 장미 두 그루가 여왕처럼 서 있다. 분홍입술을 뾰족이 내민 지도 사흘째, 설렘으로 하루를 더 기다렸다.

 “히야!”

 드디어 장미가 꽃을 피운 것이다. 딱 한 송이지만 가슴을 환하게 물들일 만큼 크고 곱다. 

 문득  사람도  세상에 심긴 한포기 식물이란  생각을 한다. 그 가운데는 누군가의 정원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장미도 있고 백합도 있으며 어느 산자락 돌 틈 사이 수줍게 핀 제비꽃도 있다. 화려한 꽃이든 이름 없는 작은 풀꽃이든 그 분의 눈엔 동일한 아름다움이리라. 이 세상의 주인께선 아침마다 금빛 햇살을 뿌리고 때를 따라 비를 주며 기다리실 것이다. 오늘은 어디에서 어느 꽃이 향기를 풍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