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로 그 메시야요 (요 4:26)
고통받는 이와 함께하는 그리스도 모습 
북방계 그림답게 섬세한 터치로 그려내   

그리스도가 사마리아여인을 만난 것은 공생애를 시작한지 얼마만 이었을까. 그 기간은 아마 8∼9개월쯤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제 유대땅에 머물던 그가 그곳을 떠나 갈릴리로 향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예수를 따르는 자가 많아짐으로(요 4:1-2) 그 지역 바리새인들의 적의적 태도가 더욱 고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그동안의 예수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더니 다시 미움으로 변한 것이다.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는 길은 두개의 통로가 있었다. 하나는 비교적 평탄하고 숲이 있는 아라바 길이다. 다른 하나는 험준한 고원이고, 유다와는 거의 적대적 관계에 있다할 사마리아를 통하여 가는 길이다. 

 주님이 택한 것은 후자, 사마리아의 길이다. 이는 불필요한 노출과 예상되는 바리새인들과의 마찰을 피하려는 지혜롭고 신중한 배려에서 나온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놓칠 수 없는 것은 그러한 불안한 상황에서도 그곳에서의 전도와 하나님 나라의 선포를 충분히 고려한 선택이라는 점이다.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과의 극적인 만남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대와 사마리아 사이의 아픈 역사적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사마리아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의 갈등 관계는 앗시리아의 이스라엘 정복(B.C 721)에서 본격적으로 비롯되었다. 사르곤2세의 대대적인 히브리인 이주정책으로 그곳 거주자 유대인 대부분을 다른 나라로 축출하고 대신 이국인들을 유입하였다. 이로 인해 혼혈 유대족을 낳게 되었고, 자연히 전통과 종교에 있어서도 가는 길이 달라지고 (모세5경만 믿음)두 종족사이에는 심한 갈등관계가 형성되어 왔었다. (왕하 17장)

 성경을 읽을 때 자주 진한 감동을 느끼지만, 사마리아 여인과 그리스도 사이의 대화 장면은 한편의 소설, 한편의 파노라마 연극을 보는듯한 느낌이다. 햇볕이 하얗게 내려 쪼이는 들녘 조용한 샘터 가에서 행해지는 메시아와 한 여인 사이의 조용하나 엄숙한 대화의 순간을 상상해보자. 그들의 대화는 한점 한 획도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완벽한 짜임새이다. 

 한나절 더위에 바윗길을 오르며 내리며 걸었던 그리스도는 우물터 곁에서 지친 몸을 잠시 쉬고 있었다. 때는 정오라 사람의 발길도 끊긴 그 시점에 한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야곱의 우물가에 나타났다. 예수께서 물을 달라 하시니 사마리아 여자는 사뭇 못마땅한 어투로 유대인 당신들이 상종치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게 물을 달라하니 이거 왠일 이냐고 힐난하듯 물었다. 예수는 만일 당신이 내가 누구인줄 알면 오히려 내게 생수물을 달라 할 것이라고 응답하였다. 그 여자는 우물은 깊고, 물길을 그릇도 없는 이가 생수를 준다고 하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큰사람이 아니고는 그럴 수 없다고 응수하였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자 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3∼14) 남편 다섯을 두었고, 지금 있는 자도 자기남편이 아닌 이 수난의 여인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 죄의 짐을 벗어 버리기 위해 그녀는 메시아만이 줄 수 있는 이 생명수를 누구보다 더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때 예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것은 논리가 아니라 만남이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요 4:26)
 이 그림을 그린 작가 반 칼카르(Janjoest van Kalkar, 1455/60-1519)는 독일 칼카르 출신으로 그곳과 네덜란드에서 적극 활동하였다. 이 작품은 북방계 그림답게 섬세하고 얼굴표정이 뚜렷하며 분위기는 깊이가 있다. 조용한 우물가 정오, 위에서 떨어지는 빛이 예수의 얼굴과 사마리아여인의 그것에 떨어져 단연 두 사람이 뚜렷이 대칭으로 부각된다. 그리스도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역력하다. 진지함이 베어있고 여인의 깊은 호기심은 두레박물을 물동이 밖으로 흐트러뜨릴 정도이다. 우물은 이끼 낀 듯 오래 되었고 그 깊이을 말하듯 물길어 올리는 도르레가 장치되어 있다. 한마디로 이 작품은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그리스도의 관심을 진지하게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남의 고통이라도 자기가 당하는 정도만큼 밖에 보지 못한다. 하지만 고난의 깊이는 상상할 수 없이 깊고 깊을 때가 있다.     이석우 교수<경희대 중앙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