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장애인 등에 무료 특강

신지식인·한복 기능장 ‘1호’

* 백애현 집사(한복디자이너·여의도순복음교회)

빨리 성과를 내고 급하게 일을 마쳐야 인정받고 생존할 수 있는 디지털 세상이기 때문일까. 원칙을 지키고 정도를 걸어가는 장인과의 만남은 왠지 가슴 설레기까지 한다. 봄비가 겨우내 잠들었던 대지를 깨운 16일 한복 연구가 백애현 집사를 만났다.

‘전통의상 신지식인 1호’, ‘전통한복 기능장 1호’ 등 국가가 기술력을 인정하고 있는 백 집사는 24년간 한복의 대중화에 앞장서온 국내 한복 연구의 권위자다. 그는 ‘현대사회에서 한복이 대중적인 지지를 얻으려면 한복 고유의 아름다움과 실용성이 결합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실용한복 연구에 매진해 왔으며 한복의 표준화를 위해 국내외 각종 박람회와 패션쇼 등에 참가해 한복 표준화에 앞장서 왔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한복학원을 운영하며 후진양성에도 기여하고 있는 백 집사는 국가기술자격증 출제위원을 역임하는 한편 천하장사 씨름대회 등 민속경기에 손수 지은 전통의상을 제작, 일반에 공개하기도 했다.

또한 DTP라는 첨단방식을 이용해 한복에 한 폭의 명화를 담아 제작하기도 했으며 지난 2002년 프랑스의 모 영화배우가 “한국은 개고기를 먹는 나라”라고 비난했을 당시 애견 한복을 만들어 한국인의 견공사랑을 알리기도 했다. 당시 행사는 CNN방송, AP통신, AFP통신 등 세계 2000여 개 언론사를 통해 소개되는 등 한국의 이미지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 2003년 5월에는 미국 워싱턴 케네디홀과 뉴욕 링컨센터에서 열린 한·미 동맹 50주년기념행사에서 한복패션쇼를 열어 한복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과시했다. 비슷한 시기 미주한인100주년 기념식이 열린 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등 2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태극기와 성조기로 수놓은 한복을 선보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런 활동을 통한 국위선양도 돋보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훈훈케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이웃사랑의 마음과 실천이다. 2002년 1월부터 백 집사는 북한자유이주 여성들과 장애인, 가장이 실직한 가정의 주부, 소년소녀가장 등의 자립을 돕기 위해 이들에게 무료로 한복 짓는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학원수료 후에는 취업까지 시켜주고 있으니 평생 밥을 먹고사는데 지장 없도록 밑천을 만들어 주는 셈이다.

어찌 시작된 일인지 궁금해 물었다. 1997년 말부터 우리 경제를 강타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의 한파는 그가 운영하는 한복 숍도 가만두지 않았다. 대형 숍 세 곳을 운영하고 있던 그는 마음이 약해 꼭 필요한 직원만 남겨놓는 정리작업을 해야했지만 하지 못했다. ‘내가 좀 힘들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참았을 뿐이다. 하지만 IMF한파는 쉽사리 끝나지 않았고 쌓이는 부채를 해소하기 위해 그는 운영하던 숍을 하나씩 정리하는 것으로 위기를 넘겨갔다. 그렇게 힘들여 얻은 부는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변했고, 숍은 본점을 제외하고 모두 문을 닫았다. 그 때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열 두 번씩 솟구쳤다’고 했다. 생각뿐 아니라 이웃에게 진 빚만 갚으면 죽으려고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라디오를 켰다. 기독교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목사님의 설교는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교회 뜰만 밟았지, 제자로서의 삶은 아니었다. 이런 깨달음은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만들었다. 충분히 불평하고 불만을 토로할 만한 사정이 갖춰졌지만, 이 순간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을 받을 수 있었다. ‘과부 사정을 홀아비가 안다’고 했던가. 하나님은 그에게 물질의 허망함을 알게 하신 한편 사람의 소중함을 알려주셨다. 그러자 돈이 있고 여력이 있을 때에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앞서 말한 사람들이 그들이었고, 그들과 나누기 위해 그의 사무실과 숍의 전시실을 터 그 자리에 미싱을 들여놓고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렇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자, 다음은 하나님이 일하셨다. 죽음까지 염두에 뒀던 그에게 하나님은 2002년 ‘전통한복 기능장 1호’란 선물을 주셨고, 다음 해에는 ‘전통의상 신지식인 1호’란 명예를 더해주셨다. 이런 일들을 경험하며 그의 매일아침 기도제목은 한결같아졌다고 했다. “첫째는 겸손함을 잃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고, 둘째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달라는 것이며, 셋째는 지혜를 달라는 것입니다” 시련의 터널을 지나기 전이라면 그 또한 ‘내게 부족한 무언가를 채워달라’는 식의 기도를 했을지 모르지만, 시련은 그의 신앙도 함께 성숙케 했다.

백 집사가 한복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어릴 때 늘 한복을 입고 있던 어머니의 아름다운 모습 때문이다. “어머니는 언제나 한복을 입으시고 단아한 모습으로 지냈어요. 학교에서 돌아올 때면 세모시로 만든 한복을 입고 문 앞에서 우리를 맞아 주셨어요.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한복에 빠져 버렸어요”

요즘 그에게 새로운 일 욕심이 하나 더 생겼다. 외국여행 중 현지식당을 들른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 가져봄직한 아쉬움을 그는 말했다. “일식당에 가면 기모노를, 중식당에 가면 치파오를, 베트남식당에 가면 아오자이를 입은 도우미들을 만나곤 하는데 국내외의 이름난 한식당엘 가도 한복을 입고 일하는 것은 많이 보지 못했어요. 아무래도 일하기에 불편하니 그러리라 생각하지만, 국적이 모호한 옷을 입고 일하는 것을 볼 때면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한복 연구가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공감된다. 이런 아쉬움을 타개하기 위해 그는 몇 년 전부터 한식당 도우미들을 위한 개량한복을 만들어 보급하고 있고, 힘이 닿는 한 이 일을 전개하고 싶다고 했다. 덧붙여 “앞으로도 믿음 위에서 열정적이고 긍정적이며 성실하게 살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그와 한 인터뷰 정리를 마감하며 문득 ‘프로는 아름답다’는 광고카피가 머리를 스쳤다.

박재형 기자 kevin@fg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