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얘기해보면 소녀시절에 비슷한 꿈을 꾸었음을 알게 된다. 어느 날 키다리 아저씨가 찾아오는 꿈, 소공녀 세라처럼 고생 끝에 낙이 오는 일 등등. 의외로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주인공 소녀처럼 병원에 입원하는 소원을 가졌던 친구들도 많았다. 아마도 그림동화책에서 레이스 달린 잠옷을 입고 창가 병실에 예쁘게 누워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소녀시절 창백한 얼굴로 병문안 온 친구에게 꽃다발을 받으며 힘없이 미소짓는 꿈을 꾸곤 했다. 최근에 간단한 수술을 받느라 생전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금요일 오후에 입원하여 주일 아침에 퇴원했으니 시간상으로는 38시간에 불과했지만 병원침상에서 꼬박 이틀 밤을 지냈다. 수술 후 여섯시간 동안 절대 머리를 움직이지 말라는 의사의 엄명에 따라 링거를 꽂고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천장만 바라보고 있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병원에 한 번 입원해봤으면’이라는 소망이야말로 결코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와 함께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수술하러 들어갈 때의 심정과 아무 것도 못하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는 이들의 심정을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종일 누워있는 게 얼마나 허리 아픈지, 계속 링거를 맞는 일이 얼마나 불편한지, 맛있는 음식을 먹는 TV 장면이 얼마나 환자에게 고문인지, 아무도 없는 병실에 혼자 누워있는 게 얼마나 외로운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단 38시간을 병원에서 지내는 것도 힘든데 장기적으로 입원해 있는 사람, 퇴원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의 심정은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저려왔다. 퇴원하는 날 아침, 겨우 하루 반나절을 병원에서 지냈을 뿐이지만 인생공부를 많이 하고 하산하는 느낌이었다. 병원문을 나서면서 앞으로 입원하는 친구가 있다면 전화로 안부만 물을 게 아니라 반드시 찾아가서 손잡고 위로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병원에 있는 사람은 달리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옆에 앉아 즐거운 얘기를 들려주는 게 가장 반갑다. 마음이 허허롭고 의지할 길 없는 환자를 찾아가 선교하는 분들이야말로 귀한 사역을 한다는 것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역지사지를 깨달았으니 조변석개(朝變夕改)가 되지 않도록 실천을 잘 해야겠다. 이근미 작가 www.rootle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