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해가 아름다우면 지는 해도 아름답다. 봄에 새싹이 터져나오는 것도 아름답지만, 가을에 푸른 잎들이 노랗고 붉게 물드는 것도 아름답다. 봄날의 금강산이 아름다우면 여름철의 봉래산도 아름답고, 가을날의 풍악산도 그러하고, 겨울철의 개골산도 더욱 그렇다. 모두가 신비요 경탄이며 감격이다.

 어린 그리스도인이 귀엽고 참한 꿈나무라면, 청년의 그리스도인은 힘차고 믿음직한 기둥 같고, 장년의 그리스도인은 봉사와 충성의 청지기며, 노년의 그리스도인은 사랑과 이해로 충만한 낙락장송과 같다.

 어느덧 한껏 자태를 뽐내던 단풍잎도 우수수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가 드러나고 있다. 노란 빛깔로 감흥을 주던 은행잎이 홀연히 다 떨어져버릴 때, 여전히 돋보이는 나무가 언제나 변함없는 소나무다. 솔잎의 푸른빛도 푸른빛이거니와 더욱 감탄을 자아내는 것은 잎새들이 다 떨어지는 계절의 조류에 영합하지 않고 여전히 빽빽한 잎을 자랑하는 솔잎의 자태이다. 저들도 낙엽과 함께 떨어져버리고 바람과 함께 뒹굴고 싶은 마음이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솔잎은 변함없이 가지에 붙어서 가랑잎과 함께 굴러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아주기를 기뻐할 것이다.

 그런데 근래에 소나무들이 유래 없는 수난을 겪고 있다. 소위 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는 재선충병이 경상남도에서 발생하여 계속 북쪽으로 전파되면서 소나무를 말라죽이고 있는 것이다. 솔수염하늘소에 기생하는 재선충이 소나무에 들어가면, 소나무의 양분과 수분의 이동경로를 차단시켜 소나무가 우산살 모양으로 쳐지면서 시들어가다가 빨갛게 변해버린다. 소나무는 가을이 오고 겨울이 와도 푸른빛을 잃지 않는 것이 본연의 모습인데, 재선충병에 감염되면 푸른빛을 잃고 붉게 변하고 빽빽한 솔잎도 우수수 떨어져 말라죽고 마는 것이다.

 본래 그리스도인은 봄, 여름, 가을, 겨울에도 늘 푸른빛을 발하는 소나무처럼 언제나 빛나는 존재이다. 그런 소망찬 그리스도인이 삶의 용기와 기쁨을 잃고 시들어버리는 것은 재선충과 같은 세상의 염려와 근심, 재물의 유혹에 감염되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소나무 재선충병을 치료하는 길이 없다고 한다. 소나무의 중심까지 파들어간 재선충을 제거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을 파멸시키려는 어떠한 세상의 유혹과 쾌락의 중독과 뿌리깊은 죄악의 습관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라는 백신으로 깨끗이 치료된다. 세파의 찬바람에 낙엽지고, 홍진(紅塵)의 세상에 파묻혀 빨갛게 물든 그리스도인일 지라도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와 보혈로 씻음받으면 또다시 푸른빛을 얻고 허무하게 낙엽처럼 떨어져 뒹굴지 않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푸른 소나무요,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아름다운 낙락장송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조차 계절 따라 변하고 세상풍파에 좌절한다면, 이 세상에 무슨 소망과 기쁨을 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