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해진 일상에 관조와 사색을 몰고 오는 만산홍엽의 가을은 다들 좋아한다. 단풍의 화려함이 찰나에 지고 쓸쓸히 포도를 뒹구는 낙엽을 바라보면 절로 내디딜 걸음을 멈추고 내가 선 자리를 돌아보게 된다. 거기에 지인의 부고장이라도 받아들면 누구라서 하늘의 뜻을, 영원의 의미를, 편각같은 인생의 덧없음을 반추하잖을 사람이 있을까.

 삶은 가볍지 않다. 허투루 치부할 수 없는 진지한 과정이다. 신앙생활과도 죄다 닮아있다. 자주 삶의 찌꺼기를 걸러내고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부여잡는 지혜로운 시선을 키우는 과정임에 그렇다. 그러기에 신앙이 무거운 것은 아니나 묵직한 사색은 늘 필요하다. 세상살이에 코박고 살다보면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이 뒤섞이고 또 그 경계가 무뎌지기 다반사다. 인생을 뒤돌아보고 하늘의 뜻을 살피게 되는 이 가을에 날을 벼리는 자세로 신앙을 다듬고 키우고 넓히고 세련시키는 연습을 해봄직하다.

 먼저, 겸손하고 부드러운 모습, 말랑말랑한 예절로 휘감은 온유한 신앙인, 어떤가, 생각만으로도 흐뭇하잖은가. 신앙의 이름을 내건 무작스러움은 정말 꼴불견이다. 크신 하나님의 능력도 그런 두꺼운 몰상식과 뻔뻔한 비례(非禮)를 뚫지는 못할거란 생각이 든다. 어쩐지 싸구려 틀에 끼워넣은 램브란트 그림처럼 그 진가가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떨치지 못한다. 눈부시게 예쁜 꽃을 시샘없이 받쳐주는 질박한 꽃받침처럼, 잘 다듬어지고 여과된 교양과 인격이 단순하고 소박하게 우러나오는 신앙인은 누가 봐도 아름답다. 신앙의 모습도 시나브로 우아하고 세련되게 가꾸어 가는 고단한 수고가 필요하다.

 그리고 깨달음의 폭을 넓히기 위해 진통해야 한다. 깨달음이 일천하면 신앙은 답답해지고 이해의 폭은 졸아든다. 넓은 폭은 좁은 폭을 품어도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듯이. 예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왜 그토록 질타하셨을까. 생각이 뻣뻣이 굳어져 있고 자기의 아성에 갇혀 있음을….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가 타인의 다름에 대한 지독한 불친절, 불관용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가장 나쁜 것은 가장 좋은 것이 변질됐을 때이듯, 좋은 율법을 나쁜 율법주의로 변질시켰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우(愚)를 우린들 피할 수 있을까. 껍질을 깨는 아픔을 딛고 건져올린 깨달음만이 자유와 환희를 준다.

 신앙이 무르익은 사람일수록 사고가 유연하고 너그러운 똘레랑스(관용)가 있으며 눅진한 친절과 상쾌한 자유함이 녹아 있는 것을 본다. 진리도 아닌 일리(一理)에 불과한 주장들로 쓸데없이 대립각을 세우고 핏대를 올리는 경솔하고 부박한 일은 멀리 한다. 진리를 알고자 애쓰는 자에게 선사되는 자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만끽하는 초월의 기쁨!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는 그런 활연한 깨달음이 그립잖은가?

올 가을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