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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훈련의 대안]절제는 이렇게
 

자유를 누리는 크리스천의 절제


하나님 영광과 이웃사랑 목표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던 우리나라의 경우 예를 중요시했다. 그리고 절제는 예를 지키기 위한 필수 덕목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이나 욕심을 절제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고 절제를 통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일컬어 선비라고 부르며 그들을 칭송했다. 하지만 이런 선비들은 율법주의자들과 다르지 않다. 절제는 미덕이지만 율법적으로 강제성을 띈다면 그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절제와는 그 의미가 다르다.

 성경(갈 5:1)은 우리가 율법의 구속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자유를 얻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유를 누리는 우리 크리스천은 절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크리스천의 절제는 선비들의 그것과는 그 기준부터가 다르다. 크리스천의 절제는 자유를 누리면서 하는 절제라는 점에서 다르다. 우리나라가 60년대 한국전쟁 이후 낙후된 경제상황에 어쩔 수 없이 했던 음식에 대한 절제와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 속 건강을 위한 음식에 대한 절제가 다르듯 우리 크리스천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와 풍요 속에 절제를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율법주의자들이나 선비들은 율법과 예의에 자유가 속박되어 있다.  

 그러면 크리스천의 절제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 절제는 목적의식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목적의식이 있다고 다 절제가 아니다. 예로 다이어트는 절제에 포함되지 않는다. 다이어트의 목적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크리스천의 절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먹고 마실 때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했다(고 10:31). 즉 무엇으로 절제를 하는가보다 무엇을 위해 절제하는 것이 더 중요하는 것이다. 반대로 바리새인처럼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절제하는 것은 절제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절제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 동반되어야 한다(갈5:13~14). 즉 그리스도께서 주신 풍요와 자유를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절제인 것이다.

 이제 곧 겨울이 다가온다.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노숙자들과 양로원과 고아원에서 사랑에 굶주린 이웃들이 사랑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절제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들에게 보내는 작은 사랑이 곧 절제의 첫걸음이다.

 

기사입력 : 2005.11.04. pm 17:26 (편집)
정승환기자 (kg21@fgt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