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선진의 순교 정신 오늘에 되살려
하나님과 역사 앞에 부끄러움 없어야
올해 100주년을 맞은 제암교회. 지금 세워진 교회는 다섯번째 새로 지어진 건물로서 1905년 제암리 이장 안종후 권사가 세운 첫번째 교회는 일제의 손에 사라졌다. 일제치하에서 제암교회는 지역주민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민족운동과 독립운동의 역할을 감당해 왔다. 이런 제암교회의 정신은 서울에서 1919년 3.1 만세 운동과 맥을 같이해 4월 5일 발안주재소 앞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주도로 이어졌다.
일제는 이에 대한 복수로 1919년 4월 15일 제암리교회 신도이 주축이된 만세운동 주모 인사 명단을 입수해 이들을 교회에 모이게 했다. 무장한 일본 군인들은 교회를 향해 집중총격과 방화로 23명을 살해했다. 이어 외딴곳에 있는 한 두채를 제외하고 마을에 있는 31채 가옥을 불태웠다. 끔직한 살육의 현장, 살타는 냄새와 연기가 온하늘을 덮었다. 제암교회 순교자들은 불의에 항거하며 그것이 결국 목숨을 잃게 되더라도 행동으로 앞장서는 모범을 남겼다.
일제의 이러한 만행은 캐나다 선교사인 스코필드 박사에 의해 세계 언론에 알려지게 되었다. 스코필드 박사는 일제의 방해에 굴하지 않고 불타 한덩어리로 엉킨 시신을 수습하여 매장했다. 또한 참상에 대한 내용을 사진과 기록으로 남겨 서구세계에 알렸다.
현재 순교자들의 희생과 그들이 남긴 정신은 3.1 운동 순국기념탑과. 3.1운동 순국기념관, 순국 23인 상징 조형물 조각공원, 23인 순국합동묘지 등에 남겨져 있다.
제암교회는 개신교가 한국 민족주의 운동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드러내고 있으며 현재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에게 애국애족의 사명을 일깨워주고 있다. 제암교회 담임 강신범 목사는 교회를 방문하는 성도들에게 “아무리 힘들어도 일제치하에서 신앙 선배들이 당한 고초만큼은 심하지 않다. 앞서가신 신앙 선진들의 삶의 자리를 돌아보고 내 모습을 점검하는 기회로 삼을 것”과 “하나님 앞에서 역사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다가자”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