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바람에 실려 내 머리칼을 휘감고 도는 여름향기가 그리워진다. 내 작은 어깨에 내려 앉은 그 향기는 또 다른 행복을 안고 허공을 돌아 자연 속에 흩뿌려진다. 나는 자연에 묻혀있는 또 다른 여름향기를 찾아 도회지 답답한 빌딩 숲을  벗어나 대자연이 숨쉬는 초원과 다른 문명 속으로 나를 찾아 나선다.

‘화려한 고대문명의 발자취를 찾아서’ -중남미문화원

 경기도 고양의 어느 한적한 길을 따라 들어가다보면 ‘아니, 이런 곳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름답게 단장된 이색적인 장소를 발견하게 된다. 정문을 들어서면 초록 짙은 자연을 배경삼아 전시된 다양한 조각들이 오밀조밀 서 있다. 한 눈에 보아도 남미 지역 예술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문에서 제일 가까운 건물안으로 들어가면 잔잔한 라틴 음악이 방문객의 발걸음을 사로잡는다. 박물관에는 마야·잉카제국의 유물 20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멕시코-중미일대(Meso-America)의 토기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마야 토기(A.D 550∼950)와 함께 코스타리카·파나마 일대의 쪼로떼가(Chorotega: A.D 1000∼1400) 토기, 니꼬야(Nicoya) 반도의 메따떼(Metate:A.D 300∼700), 베라끄루스(Veracruz) 지방의 올메까(Olmeca)와 꼴리마(Colima:B.C 100∼A.D 250) 토기 등도 진열되어 있다. 중남미지역의 문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이 곳은 중남미문화원 박물관이다.
 또 다른 건물은 중남미 공예와 도예, 그림들이 전시된 미술관. 남미 특유의 화려한 색상이 고스란히 배어나오는 작품들에 이국적 신비와 동경의 기대감이 느껴진다. 이 때문에 작품과 작품 사이를 장식하는 스테인드 글라스 마저 하나의 전시품처럼 느껴질 정도다. 지하 1층에서 볼 수 있는 해바라기 작품은 금방이라도 그림 속에서 꽃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창문 너머에는 오전에 내린 빗방울이 나뭇잎에 걸려 계속해서 영롱하게 반짝거린다.
 중남미문화원 볼거리는 이뿐만이 아니다. 2001년에 조성된 야외조각공원에는 남미지역 작가들이 기증한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고풍스런 벤치에 앉아 책을 읽다보면 한 여름의 더위가 잠시나마 잊혀진다. 
 국내 유일의 중남미 관련 박물관인 이 곳은 30년 동안 코스타리카,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 중남미 지역에서 외교관 생활을 오래한 이복형, 홍갑표 부부의 열정으로 빚어졌다. 3000여 점의 중남미 문화유산이 모여 있는 곳은 1993년 5월 3일 비영리 문화재단으로 설립 인가를 받았고 1994년 10월 6일 미술관을 개관하였다. 박물관으로 등록된 것은 1994년 11월 1일로 그후 1996년 9월에는 테마 박물관으로 지정되는 한편 문화체육부 장관으로부터 우수 박물관으로 표창, 또한 2회 고양 건축문화대상을 받기도 했다.
 마야·잉카·아즈텍 문명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중남미문화원의 홍갑표 이사장은 “이처럼 아름다운 문화원을 만들수 있게 해주신 것은 하나님이셨다. 그런만큼 소유보다는 문화를 공유하므로 많은 사람들과 행복을 나누고 싶었다”고 말한다.
 한 여름 싱그런 녹음속에서 만난 중남미문화원은 자연과 문화의 조화 때문인지 돌아오는 발걸음이 쉽게 떼지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돌아오는 길에 뒤를 돌아보며 ‘또 다시 오리라’는 굳건한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연중무휴인 이 곳만의 또 다른 특징은 볼거리와 함께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것. 방문당일 오전까지 예약을 하면 월∼토요일까지는 전통음식 빠에야를, 주일에는 야외 조각공원에서 타코를 먹을 수 있다(관람시간 오전 10∼오후 6시(4∼10월), 오전 10∼오후 5시(11∼3월)/ 관람료: 성인 4500원, 군인·학생 3500원, 12세 이하 3000원/ 031-962-9291,7171).

찾아가는 길
▶ 버스·지하철 이용시-지하철 3호선 구파발 역 하차. 2번 출구로 나와 7731, 703, 33번 버스를 타고 고양동시장 앞 하차. 훼미리마트 앞에서 마을버스 8번을 타고 중남미문화원 하차
▶ 자가용 이용시 - 행주대교에서 능곡·원당 방면으로 가다 벽제에서 통일로·문산방향 진입, 1㎞쯤 가다 오른쪽 필리핀참전기념비 옆 65번 국도로 우회전, 2㎞정도 진입하면 중남미문화원

 빗줄기를 따라 드넓은 초원을 거닐다 언덕 허리춤에 걸린 안개를 보았다. 한 뼘 쯤 자란 초지와 경계를 나타내는 하얀 울타리가 조화를 이루며 보는 이에게 ‘여유’란 단어를 연상케 한다.
 눈을 감고 있으면 귀에 들리는 소리는 전깃줄에 앉아있는 새소리와 ‘쏴아’하고 바람에 제 몸을 흔드는 나뭇잎 소리 뿐이다. 정적이 감도는 이 곳 원당 경주마목장(구 원당 종마목장)은 아직 모르는 사람이 많아 그만큼 고요하다. 그래서 산책하며 자연을 벗삼아 사색하기에 그만이다. 벤치에 앉아 드넓은 초지를 자유롭게 내달리는 말을 볼 땐 신기하기도 하고, 막혔던 가슴이 시원스레 뚫리는 것 같아 어른 아이 모두 이 곳을 좋아한다.
 원당 경주마목장은 1984년 만들어졌다. 경주마 시험생산을 위해 설립된 이 곳은 우수한 혈통의 씨수말로 내륙지역 씨암말에게 무료로 교배를 실시하며 번식검사 및 사양기술지도 등 마사회가 축적한 기술을 전하고 있다.
 현재 이 목장에서는 2억∼6억원을 호가하는 씨수말 등 20두가  있다. 해외 경주에서 우승한 명마 ‘사이코배블’ ‘샤프어필’ ‘프로포슈어’ 등은 화려한 경주 경력과 함께 명확한 족보가 명시되어 있다.
 또한 이 곳에선 어린 말을 경주마로 훈련시키기 위해 18개월령 이후 걷기, 타기, 뛰기 등 순치훈련을 시킨다. 매달 셋째 주 목요일에 방문하면 순치훈련을 관람할 수 있다. 보통 경마장에 가면 멀리서도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가까이에서 훈련받는 말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담당 이재천 씨는 “전체 11만평 중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면적은 5만평 초지”라며 “도심 가까이 이처럼 완벽한 자연공간이 있다는 것은 자연의 혜택이다. 사계절 달라지는 주변 경관이 아름답다는 입소문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매년 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원당 경주마목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은 가는 길에 있는 ‘은사시나무길’이다. 서삼릉 오솔길이라고도 불리는 이 길은 300여m밖에 되지 않지만 몇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아름답다. 특히 가벼운 바람에도 흔들리는 은사시나무 잎사귀가 머리 위에서 하늘거리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시원하게 해 연인들의 트레킹 코스로 이름이 높다.
 무료입장인 원당 경주마목장은 월,화를 제외한 나머지 요일 모두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하절기/ 동절기에는 오후 4시)까지 개방된다. 주차장이 따로 없다보니 좁은 진입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하기 쉬워 주말보다는 평일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031-966-2998).            

찾아가는 길
▶ 강북에서 출발할 때는 구파발을 지나 원당에서 삼송리 검문소 길을 따라 오면 되고, 강남에서 출발할 때는 강북강변도로를 타고 행주산성 입구를 지나 능곡에서 원당길을 이용한다. 원당에 도착해 농협대학 길을 따라 들어오면 원당 경주마목장이 바로 보인다.

고양=글·오정선 / 사진·김용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