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바꿔보라 희망이 보인다

93세에도 대학총장으로 왕성한 활동
‘나의 信經’으로 신앙초심 잃지 않아

모 기업체 광고에 등장하는 문구 가운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다. 이 문장을 설명하기 위해 이 광고는 일흔 두 살의 나이에 낙하산을 탄 조지 부시 전 美대통령, 열 여덟 나이에 동학운동을 시작한 백범선생, 여든 한 살에 마지막 사조를 시작한 피카소를 들며 ‘나이가 몇 살이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로 광고를 맺는다. ‘뜻이 있다면 일흔이 넘어 대학생이 될 수도 있고, 실력이 있다면 스무 살 나이에 교수가 될 수도 있다’는 광고메시지는 힘든 시기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꿈을 심으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광고가 강조하듯 무슨 일을 하기에 적당한 나이란 없다. 이를 분명히 보여주는 사람이 있어 만났다. 올해 우리 나이로 93세가 된 강석규 장로(사진). 상식대로라면 집에서 편히 쉬고 있어야 할 나이지만 그는 자신이 세운 호서대학교 총장직을 20여 년간 수행하다 올해 설립한 서울벤처정보대학원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총장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후학들을 위해 ‘생각을 바꿔보라 희망이 보인다’(국민일보刊 781-9270)를 집필, 93세 청년(?)의 인생 발자취와 신념을 담았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왕성한 생의 원동력이 무엇일까 궁금해 물어봤다.

“성경에 꿈이 없는 사람은 망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고민이 크고 인생에 허무를 느낀다해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으면 됩니다. 생각을 바꿔 크고 높고 아름다운 꿈을 확고히 가지면 희망이 보이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다 보면 부정적인 생각은 물러납니다. 이렇게 되면 차츰 자신감을 갖게 되며 일의 성취감도 맛보게 됩니다”

기자가 왔다고 그냥 좋게 하는 말이 아니다. 아흔하고도 세 해를 살아오며 직접 체험하고 터득한 그의 인생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지금도 강 장로는 그의 말대로 ‘꿈을 얻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꿈을 현실로 옮겨 놓기 위해’ 한 달에 한 차례씩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을 찾는다. 보통 기도원에 가면 한 번 갈 때마다 사흘씩 기도하는데 지난 20년간 이 일은 거름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작정이란다.

빈농의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작은 키에 몸도 왜소하고 재주도 없어 ‘어려서 늘 아둔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칭찬과 격려라면 모를까, 이런 말들은 그를 주눅들게 했고 열등의식에 사로잡히게 했다. 몸도 따라주지 않았다. ‘20세 때까지 병을 달고 살았다’고 했으니 그의 주변에 좋은 것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여건이 오히려 꿈과 이상을 키울 수 있게 한 못자리가 되었다’고 했다.

결과를 하늘에 맡기고 무슨 일이든 시작한 것은 포기하지 않았다. 가정환경이 어려워 초등학교 밖에 마치지 못한 그였지만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강 장로는 24세 때 초등학교 교원자격증을 취득했다. 후에 이룩한 성과들에 견준다면 이는 결코 큰 것이 아니지만 그는 이 자격증을 얻었을 때 가장 기뻤다고 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이 자격증은 그가 독학으로 취득한 첫 자격증이었고 ‘나도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고 했다. 이후 그는 중등교원 자격증을 취득했고, 34세에는 서울공대에 진학해 만학도의 꿈을 펼쳤다. 이 부분을 설명하며 그는 대학시절 에피소드 한 도막을 소개했다.

1947년 대학 2학년 때였다. 공통필수 과목에 ‘역학’이라는 과목이 있어 200여 명 학생이 한 교실에 모여 강의를 들었는데 여느 시간과 같이 뒷좌석에 몸집 큰 사람 뒤에 숨어 앉아 교수의 강의를 듣고 있었다. 그런데 교수의 목소리가 많이 들어 본 듯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2년 전 해방될 때까지 같이 교사로 있었던 사람이었다.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고 했다. 그 교수는 나이도 강 장로보다 6, 7세 아래인데다 함께 일하던 때 월급도 훨씬 적고 대학도 중퇴한 사람이었다. 선후배 사이의 규율이 엄격했던 당시에 어느 모로 보나 까마득한 후배였던 그가 선생이 되어 앞에 서 있는 것에 놀랐다. 극도로 예민해진 그 상황에서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니 이번엔 초등학교 교사를 할 때 담임했던 학생이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산 넘어 산을 만난다는 게 이런 걸까. ‘선생님 웬일이십니까?’ 묻는 제자의 말에 대답을 못했다. 앞에 강의하는 선생은 후배요, 뒤에는 같은 반이 된 제자까지 있으니 그렇지 않아도 열등감에 눌려 매일 긴장 속에 있던 그를 더욱 주눅들게 했다. 강의는 한 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90분 강의가 마무리되어질 즈음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기왕 버린 몸’. 어차피 친척, 친구들, 세상이 다 아는 사실 아닌가? 정면 돌파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 교수를 주시하며 남은 강의를 들었다. 강의 후에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고 “당신의 제자가 됐습니다. 잘 부탁합니다”라고 했단다. 덕분에 그 교수와는 지금껏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기왕 버린 몸’으로 시작된 그의 오기와 근성 그리고 믿음은 그를 열등의식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했다. 이는 34세에 시작한 늦깎이 대학생활에도 총학생회 회장을 그리고 호서대학교 총장 재직 중에는 전국사립대학 총장모임 회장을 지내는 배경이 되었다.

강 장로의 이런 강직함은 신앙생활에서 더욱 도드라져 있다. 65세 때의 어느 날 그는 ‘나의 신경(信經)’이라고 이름 붙인 자신의 기도문을 만들었다. 나의 신경은 ‘사도신경’처럼 자신의 믿음을 표현하기 위해 적은 것인데 신앙의 초심(初心)을 잃지 않기 위해 지금껏 매일 읽고 외우고 있다. 1978년 처음 만들어진 나의 신경은 현재까지 26차례나 수정돼 그의 안주머니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의 신앙고백과 다짐에 따라 5년 전에는 사재를 모두 털어 교회와 호서대 발전을 위해 기부했다.

초등교사 6년, 중등교사·교장 18년, 대학교수 16년, 대학총장 26년 등 총 66년간 교육자의 길을 걸어온 강 장로에게 인터뷰를 마치며 청년과 이 시대 신앙인을 위한 당부의 말을 부탁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갈 것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조건이 갖춰져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은 누구든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없는 상황이더라도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93세 청년의 미소가 환한 이유, 분명히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