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부터 베들레헴성가대 지휘 맡아 활동 
뮤지컬 ‘킹’ 주연은 하나님의 예정된 계획 일부  
교수직 등 바쁜 일과 중에도 애양원서 사랑실천 

(사진=김용두 기자) 죽음을 이기시고 사흘만에 살아나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부활절 아침, 2부 예배를 앞두고 성가대 가운이 아닌 연주복을 입은 베들레헴성가대원들의 연습이 한창이다. 그 속에서 170여 명 되는 성가대원들과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하나로 묶어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끌어 내고 있는 김필승 지휘자의 몸짓이 열정적이다. 186㎝의 육중한 몸에서 품어나오는 그의 지휘는 카리스마가 넘쳐 보인다. 세미한 음 하나까지도 신경쓰는 그의 모습에 성가대원은 물론 오케스트라대원들까지도 눈을 떼지않고 곡에 몰입한다. 앉아서 듣다보니 들려오는 화음이 하도 아름다워 ‘천국이 이렇겠군’이란 느낌이 저절로 든다.

베들레헴성가대 유광문 베이스 파트장은 이날 170명 가까운 대원이 출석해 성가대석이 비좁을 것 같다며 행복한 고민을 한다. “대원 재적이 180명이에요. 전에는 평균 120명이 출석했는데, 요즘 들어 170명이 넘고 있어요. 모두들 빠지지 않고 잘 참석하는데에는 지휘자님의 영향이 커요”
 지난해 말부터 베들레헴성가대를 맡은 김필승 지휘자에 대한 대원들의 마음은 한결같다. 김필승 지휘자가 종교와 음악 두 부분 팽팽하게 잘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이다. 알토 파트 이은미 대원은 “지휘자님이 연습 중간 중간 곡과 연관된 성경말씀을 많이 들려주셔서 노래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전보다 더 느껴져 좋다”고 한다.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는 것, 이것은 김필승 지휘자가 가장 바라는 이상적인 성가대의 모습이었다. “저는 베들레헴성가대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가대가 되길 희망합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모습은 영리하고 약삭빠른, 처세를 잘하고 줄을 잘 타는 게 아니라 미련해 보이고 우직하더라도 하나님의 존재를 확실히 믿고 그분에게 모든 것을 의지해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직하더라도 하나님의 계획대로 믿음 안에 사는 사람’. 경험이 바탕이 된 이 말을 타인에게 들려주기까지 지난날 김필승 지휘자의 삶은 하나님께 바짝 엎드려 모든 걸 그의 계획안에서 움직여야만 했던 인생이었다.

“훌륭한 지휘자가 되고 싶었지만 제가 꿈꾸는 지휘자와 하나님이 계획하신 지휘자의 모습은 달랐어요. 단적인 예로 저는 지휘만를 원했지, 노래하는 사람이 되길 원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연히 저를 노래하는 길로 인도하시고는 길을 제대로 열어주시지 않는 거예요. 그러다가 막판에 아무 것도 없이 야곱처럼 하나님만 잡았을 때 길을 열어주시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 연단받았어요”

하나님은 그가 예술가이기 전에 선한 양심을 가진 인간이길 원하셨고, 재능을 통해 자신이 아닌 하나님이 높여지길 원하셨다. 가끔 대원들에게 사도 바울의 이야기를 들러준다는 그는 “바울은 위대한 일을 하고도 자신을 일컬어 ‘무익한 종’이라고 했잖아요. 저는 그 고백에 엄청난 도전을 받아요. 그래서 대원들과 함께 묵상하며 섬김과 열심을 다해 사람들로부터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란 말을 듣는 삶을 살자고 강조하죠”고 말한다.

연세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지휘자의 꿈을 품고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작곡으로 학사와 석사과정을, 지휘로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그는 미국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티토왕의 자비(La Clemenza Di Tito)>의 지휘자로 내정되어 연습하던 중 주인공 대왕역의 테너가 펑크를 내어 지휘대신 테너로 나섰다가 성악가로도 활동하게 된다. 우연히 이 공연을 보러왔던 20세기 최고의 작곡가 쟝 카를로 메노티의 눈의 띠어 1988년 서울올림픽 문화축전 때 위촉되어 작곡한 오페라 <시집가는 날>에서 그는 테너 주인공으로 공연한다. 이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내셔널 콩쿠르와 시애틀 콩쿠르에서 1등을 하게 되면서 매스컴의 주목을 받게 됐다.

더 많은 활동을 위해 89년 유럽으로 건너간 그는 오케스트라 부지휘자로 아르바이트하며 학비를 해결하는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의 손길을 톡톡히 경험했다. “89년부터 94년까지 6년동안 유럽에 있었어요. 한 번은 당장 다음날 먹을 것이 없어 걱정하는 순간 갑자기 누가 노래를 불러달라고 부탁해 한 적이 있었는데, 다음 날 1년 연주를 모두 다 맡아서 해달라는 겁니다”

자신을 이끌어주는 하나님과 믿고 일을 맡기는 사람들이 있기에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는 김필승 지휘자. 그런 그에게 웃지 못할 일화가 있다.

지난 2003년 국민일보 창간 15주년과 극단 예맥 10주년 기념으로 공연된 뮤지컬 ‘킹’에서 주인공 다윗 역을 맡았던 그는 금요일 연습이 끝나면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시차로 현지에 도착하는 시간은 금요일 오후, 그러면 막바로 맡고 있는 성가대의 금요연습을 진행했다. 토요일 하루 네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낸 김 지휘자는 다음날 주일 예배를 마치고 나서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렇게 7주를 보내자 미국쪽에서 무리하자 말고 공연에만 충실하라고 김 지휘자의 미국행을 만류했다.

하나님의 인도와 주변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뮤지컬 <킹> 공연을 무사히 마칠수 있었다는 김필승 지휘자는 “이 공연은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공연이었고, 그렇게 때문에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사실 그가 뮤지컬 공연을 맡게 된 건 하나님의 의도된 계획이었다. 뮤지컬 <킹>은 극단 예맥 대표인 탤런트 임동진 장로의 야심작이었다. 그런만큼 임 장로는 주인공 선정에 있어 많은 신경을 써 나름대로 백방을 찾아봤지만 마땅한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3∼4년 전 김필승 지휘자가 한국에 와 공연했던 일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미국에 살던 김필승 지휘자의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를 걸었다. 김필승 지휘자는 임 장로의 전화에 흔쾌히 승낙했다.

김 지휘자의 승낙에 기쁨을 감추지 못한 임 장로는 작곡자 이해찬 교수(연세대 음대)와 연출자 최종률 교수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그러자 이해찬 교수는 “이 작품을 작곡할 때 다윗 왕으로 염두해 둔 사람이 바로 김필승 씨였다”고 말했다. 이해찬 교수는 곡을 만들 때 연세대 작곡과에서 한 학기 가르친 적이 있던 김필승 지휘자를 배역으로 떠올리고 있던 것이었다.

그는 뮤지컬 <킹>을 통해 어린 목동으로 거인 골리앗을 물리치고 이스라엘 왕이 되기까지의 강한 카리스마, 그러나 한편으론 자연을 사랑하고 하늘을 향해 벌거벗고 춤까지 출 정도로 가슴이 따뜻했던 다윗을 적절하게 표현해 제17회 기독교문화대상을 받았다.

 그는 연기에서 만이 아니라 9년째 한센병 환자들이 생활하는 여수 애양원 요양소을 찾아 인연을 맺고 있어 실제 생활에서도 가슴이 따뜻한 사람으로 소문 나 있다. 미국에서 생활할 때 우연한 기회에 애양원을 알게 된 그는 설, 추석때면 어김없이 애양원을 찾아가 노인들과 생활하며 예수님의 사랑을 나눴다. 올해는 지난 1월 28일 열 네명의 베들레헴성가대원과 함께 애양원을 방문하고 떡국잔치를 벌였다.

동행한 조만휘 대원은 “우리와 결코 다르지 않은 할머니, 할아버지였는데 그동안 한센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그리고 오해를 가지고 그 분들을 대할 뻔 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베들레헴성가대 회지를 통해 고백하기도 했다.

노인복지법과 장애인복지법 대상에서 제외되는 탓에 국가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그렇다고 교회들의 후원이 밀려들어오는 것도 아닌 애양원 요양소의 현실을 안타까워 하는 김필승 지휘자는 “아직도 한국사람 대부분은 병 있는 사람 근처에 가지 않으려고 한다”며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올 여름 베들레헴성가대원들은 애양원으로 수련회를 갑니다. 거기서 한센병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찬양하고 기도하며 함께 시간을 보낼 계획입니다”

애양원 외에도 베데스다 마을과 탈북자 돕기에도 나섰던 그는 “예수님 시대에 제자들은 예수님과 이야기 나누고 함께 음식을 떼며 즐거워 했다”며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당연히 즐겁고 기쁠 의무가 있다”고 강조한다.

“저는 예수님 시대에 살았던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이 예수님 때문에 모든 생활을 즐거워했으면 좋겠어요. 성가대원들이 찬양을 할 때도 마찬가지구요. 얼마 전에는 대원들이 주일성가로 불렀던 ‘내 잔이 넘치나이다’를 부를 때마다 드라마 ‘해신’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말을 타고 예수님 뒤를 따라가는 느낌이 든다고 말을 하더라구요. 찬양을 하면서 즐거워 하는 그들 모습에 행복했습니다”

일흔 다섯이 넘은 지금도 산간벽지만을 찾아 천막을 치고 교회를 개척하는 부친의 영향을 받아 남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많은 김필승 지휘자. 하나님의 또 다른 계획을 기대하고 23년만인 지난해 한국에서 새로운 둥지를 튼 그는 하나님의 인도로 여의도순복음교회 베들레헴성가대 지휘를, 올해 3월부터는 한세대 작곡과 주임으로 교수직을 맡게 됐다.

“언젠가 조용기 목사님 설교가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날 저는 성가대 석에 앉아 눈물을 흘렸습니다. ‘지금의 나를 위해 그 많은 연단을 주셨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서야 조금 알았다는 깨달음 때문이었죠”

아이들을 미국에 떼어놓고 한국에 들어올 당시만해도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자신을 굳건히 믿어주고 기도하는 아내(이지현 집사)가 있어 늘 용기를 얻는다는 김필승 지휘자. 그는 어떠한 환경이라도 하나님을 따르자고 격려하는 아내와 함께 주어진 현재에 충실한 일꾼이고 싶은 게 희망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주일을 기다리는 ‘행복한 지휘자’라고 자신을 짤막하게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