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걸음, 사랑과 고난의 가시밭길
그리스도의 행적 따라 우리 삶 성찰해야
십자가 고난 낮아짐과 순종의 절정 표상
임형근 목사(국제신학연구원장)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 그는 온 세상의 제물이 되기 위하여 자신을 십자가에 드려야 한다는 것을 아셨다. 자신의 운명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한 주간을 맞이하실 때 사형 선고를 받은 세상 사람들처럼 그렇게 한 주간을 맞이하지 않으셨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도피하지도 않으시고, 향락에 취하지도 않으시고, 명상과 고독 가운데 홀로 계시지도 않으시고, 비애와 슬픔을 자아내는 분위기 가운데서 한 주간을 보내신 것도 아니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한 주간에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가셨다. 수난주간, 예수님의 발자취를 더듬어 봄으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신앙 모습을 가다듬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첫째, 예수님은 겸손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지를 알고 계셨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면서 환영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찬사에 우쭐대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보내신 사명을 잊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사람들 앞에서 높아지고 인기를 얻으려는 허영심에서 자유하기 위해서는 내가 이 땅에서 존재하는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마지막 한 주간을 보내셨다. 월요일에 무화과나무의 저주를 통하여 믿음이 무엇인지를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셨다(막 11:20∼25). 화요일에는 긴 가르침을 통하여 종말을 당할 때 복음 전하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셨다(마 24:14). 그리고는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반드시 다시 오시므로 믿음으로 살라고 하셨다(마 25:13). 세상의 향락이 우리를 유혹할 때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인내하는 믿음의 줄을 놓지 말아야 한다.
셋째,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한 주간을 성실하게 사셨다. 마지막 한 주간의 기사가 그 이전의 3년 반 동안의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기사의 1/3이상을 차지한다. 예수님께서는 너무나 바쁘셨기 때문에 슬픔에 젖어 있을 수가 없었다. 주님께서는 우리 역시 성실하게 살아야 할 것을 달란트의 비유를 통하여 가르쳐주셨다(마 25:14∼30). 십자가에 동참하는 삶은 산 속에 들어가서 은둔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재능을 최대한 활용하여 하나님께 유익을 드리는 삶이다.
넷째, 예수님께서는 떠나시면서 당신을 섬기는 법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셨다. 주님께서는 달란트의 비유에 연이어서 심판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경고하셨다(마 25:31∼46). 심판의 기준은 사회의 소외된 자들에게 관심을 보였느냐는 것이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께서는, 보이는 사람을 통해서 계속 섬김을 받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섬기는 것이 곧 예수님을 섬기는 삶이다.
다섯째,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가장 믿음이 좋고 아끼는 제자들을 데리고 갈 만큼 마음이 괴롭게 짓눌렸다(마 26:38). 예수님은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이것을 피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은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과 어려운 길을 받아들이는 삶이다.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성경 말씀대로 사는 삶이요, 성경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우리는 때때로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되는 고통을 참기도 하여야 한다(눅 22:44). 예수님이 올라가신 십자가는 겸손과 순종의 절정이다. 하나님께 높이 들리기 위해서는 죽기까지 복종하는 낮아짐의 자세가 우리의 몸에 배어야 할 것이다.